[팩트 체크]정신질환자 강력범죄율 일반인 10배?… 일반인 절반도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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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오해와 진실]17세 소녀 여아 유인 살해 계기로 본 조현병
증상 과장하면 처벌 안 받는다?
수사단계서 정신감정 통해 걸러져 재판에 넘겨지는 비율 더 높아

두달 뒤 정신질환자 대거 퇴원?
강제입원 조건 까다로워져… 복지부 “퇴원 3000명 이내일 것”

“이래서 정신질환자는 격리해야 합니다.”

최근 인천에서 8세 여아를 살해한 A 양(17)이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진료를 받아왔다는 내용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를 본 조현병 환자 B 씨(34)는 가슴이 무너졌다. 정신병원 퇴원 후 직업재활 실습을 받던 그는 지난해 5월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업체에서 쫓겨났다. “정신질환자와 함께 일하는 게 불안하다”는 이유였다. 편의점 채용 계획이 무산된 B 씨의 동료 환자 10명은 여전히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B 씨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A 양 사건 이후 다시 정신질환자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자신의 가족이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흉악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조현병 환자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질환과 범행의 인과관계와는 무관하게 ‘조현병 포비아(공포증)’가 퍼지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및 범죄심리 분석가와 함께 조현병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짚어봤다.

#1. A 양은 조현병? 사이코패스?

A 양은 지난달 29일 놀이터에 있던 피해 아동을 아파트 엘리베이터로 유인하는 과정에서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15층을 피해 13층에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치밀하고 계획적인 행동은 조현병의 주요 증상인 △충동적인 행동 △의사소통의 둔화 △언어·행동체계의 와해와는 거리가 멀지만 초기 환자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시신을 옥상 물탱크에 유기하는 등의 행동에 비춰 보면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나 다중인격(해리성 정체감 장애) 증상이 동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2. 정신질환 증상 꾸며냈나

A 양은 범행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사건 당시에 대해 “꿈인 줄 알았다”거나 “시신을 유기한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정신질환 병력을 꾸며내는 다른 강력범죄자들처럼 A 양이 불구속 수사나 감형을 기대하고 증상을 과장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초등생을 성폭행한 조두순(65)과 여중생을 살해한 김길태(40)도 수사 당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술에 취해 판단 능력을 잃었다”며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3. 정신질환 범죄자는 처벌을 피할 수 있나

정신질환 증상을 과장하려는 일부 범죄자의 전략은 최근 수사 단계에서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검경이 정신감정을 통해 사건 당시 증상 발현 여부를 조사하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의 ‘2015년 범죄자 처분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 강력범죄자의 기소율은 49.9%로 전체 강력범죄 기소율(47.8%)보다 높았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지는 정신질환자의 비율도 18.4%로 전체 평균(14.3%)보다 높다.

#4. 조현병 환자는 폭력적인가

제때 치료받지 않으면 폭력적일 수 있다. 조현병의 대표 증상인 ‘피해망상’이 심해지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기간이 길어지면 보호자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이유 없는 분노감이 쌓이고 ‘액팅아웃(급성 증상 발현)’ 때 자해·타해 행동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범행 가능성이 5% 이하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권일용 경찰청 범죄행동분석관은 “A 양의 경우 조현병 자체보다는 가족이 치료에 적극 개입하지 않아 관리가 되지 않은 탓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5.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율이 높다는데…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율이 일반인의 7∼10배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통계 해석의 오류다. 대검에 따르면 2015년 전체 범죄자 202만731명 중 강력범죄자(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는 3만5139명(1.7%)이었고 전체 정신질환 범죄자 7008명 중 강력범죄자는 781명(11.1%)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수로 환산하면 전체 평균은 68.2명인 반면 전체 정신질환자(231만8820명 추산) 대비 강력범죄자는 33.7명으로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다만 최근 정신질환 강력범죄의 증가세가 전체 평균보다 2배 이상 가파른 것은 사실이다. 이는 기존엔 일반인으로 기록됐을 ‘보복운전’ 가해자가 ‘분노조절장애자’로 분류되는 등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6. 두 달 후 정신질환자가 대거 퇴원하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의료계 일부에선 5월 30일 시행되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현 정신보건법)으로 인해 강제입원 조건이 까다로워져 현재 입원 환자 4만2210명 중 1만5000∼1만9000명이 한꺼번에 퇴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강제입원 조건인 ‘자해·타해 위험’ 기준이 ‘잠재적인 자살, 자해 위험’과 ‘타인에 대한 심리적인 위협감’ 등으로 폭넓게 정해져 있어 퇴원 환자가 3000명 이내일 것이라 보고 있다. 최성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은 “현재 입원 환자를 붙잡아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낙인 탓에 정신병원에 발길을 끊은 중증 환자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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