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50년]<下>첩보전 어떻게 진화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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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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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CIA ‘비밀주의’ 벗고 재기… 러FSB ‘이데올로기’ 벗고 변신

국가정보원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국정원의 향후 진로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의 상존하는 위협에 대응함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정보환경 변화 및 시대적 요청, 국제 추세 변화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세계 각국 첩보 활동의 중심축도 첨단장비를 활용한 전장(戰場)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경제 산업 분야에서도 총성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북한의 위협에다 컴퓨터와 통신 네트워크의 발전에 따른 사이버테러, 국제 테러리스트가 주도하는 초국가적 안보 위협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국정원의 능동적 대응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실패와 교훈


미 정보당국이 5월 1일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한 것은 과학정보의 개가임과 동시에 정보기관들의 정보 공유 문제가 해결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CIA는 빈라덴의 연락책 아부 아흐메드의 부주의한 통화를 포착해 빈라덴의 거주지 정보를 얻어냈다. 현지에서 작전을 담당한 것은 ‘네이비실(Navy SEAL)’이었지만 모든 작전을 기획하고 주도한 것은 CIA였다.

미 정보기관의 대표주자인 CIA는 이번 사건으로 명성을 회복했다. 이는 실패로부터의 교훈이기도 하다. CIA는 2001년 9·11테러 사건, 2002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왜곡 판단 등으로 쓴맛을 봤다.

미 정보기관의 개혁은 2005년 CIA 등 16개 정보기구의 협력을 이끌고 통제하는 국가정보국장(DNI)직을 창설해 정보 교류를 체계화하고 중복된 정보 활동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외부 전문가의 효과적 활용도 미 정보기관의 특징 중 하나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정보 분석관들은 좁은 분야의 소관 업무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며 “CIA와 미 국방부 등은 외부 전문가들의 지혜를 얻기 위해 연구과제 용역을 주거나 포럼을 자주 연다”고 말했다.

○ 미래전략 준비하는 이스라엘


수많은 가상적국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은 정보 역량을 국가 생존에 직결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다가올 30년을 상정한 안보환경 변화에 맞춰 미래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중동 국가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정세가 급변하고 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대화를 강조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송대성 세종연구소장도 최근 발표한 ‘이스라엘과 국가안보’ 논문에서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건국 이후 국가안보전략을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정해 왔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상황 변화 인식과 이에 맞는 적극적인 대처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역량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 러시아와 중국의 능동적 변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소련이 붕괴하면서 1992년 1월 27일 공식 해체됐다. 현재는 경제, 과학기술 첩보에 주력하는 대외정보국(SVR)과 방첩 및 국내 통합을 담당하는 연방보안국(FSB)이 과거 KGB의 명성을 잇고 있다.

러시아 FSB와 대테러기구들은 러시아 통합이란 명목 아래 이슬람 극단주의자나 민족주의 성향의 단체를 겨냥한 정치사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민주주의 국가 질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세계 2위 규모의 정보기관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군사·정치 이데올로기 중심에서 벗어나 경제·과학기술로 방향을 바꾸고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도 개혁개방 이후 변화된 정보 환경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후반기에는 평화적 부상이라는 화평굴기(和平굴起)에 초점을 둔 다자외교에 맞춰 국가안전부의 해외정보활동 부서를 확대하는 등 조직과 기능을 대대적으로 확대 개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국정원이 나아가야 할 길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효율적인 대북전략 수립 및 분단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정보영역은 최우선 과제”라며 “국정원이 새로운 정보 환경 변화에 맞게 효과적인 안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완비를 통해 국정원의 활동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테러 등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통신감청 활용 등이 필요하며, 다만 국정원이 과거처럼 이를 남용하는 것을 막는 장치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정원이 모든 것에 다 관여하겠다는 인식을 버리고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많다. 국정원 3차장을 지낸 한기범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북한 정보에서도 사회 부문은 민간에 과감하게 넘기고 경제도 민관 협업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정책 형성에 관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외교안보 부처의 한 당국자는 “미국 정보기관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정책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라며 “국정원은 정보와 정책을 함께 다루는 것이 장점이라고 얘기하곤 하지만 때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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