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화학의 변명' 화학상식 송두리째 바꾼다

  • 입력 2000년 10월 6일 18시 31분


화학물질은 억울하다. 인간에게 무해하고 유용해도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감미료, 콜레스테롤, PVC, 다이옥신, 이산화탄소, 질소비료…. 많은 화학물질이 근거없는 오명에 시달린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의 저명한 화학교수가 억울함을 탄원하는 세 권짜리 변론문을 마련했다. 앞서 언급한 화학물질들이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염화불화탄소(CFC)와 같은 ‘진짜 악당’과 동일범 취급을 받는 것은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 때문.

설탕 같은 감미료를 보자. 비만, 혈관질환, 충치 등의 주적으로 여겨지지만 ‘단맛’은 죄가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설탕의 범죄 혐의를 잡아내지 못했다. 성분을 따져봐도 포도당이나 밥, 셀룰로오스 같은 탄수화물과 다를 바 없으니 알리바이는 확인됐다.

‘인공’ 감미료에 대한 거부감도 부당하긴 마찬가지. 다이어트 음료에 들어가는 ‘아세파탐’은 식욕을 감소시키고, 껌에 들어가는 ‘자이리톨’은 충치를 예방한다. 설탕보다 300배나 단맛을 내는 사카린은 구명운동이라도 벌여야할 판이다. 각종 과일음료, 당료식, 다이어트식에 필수지만 아직도 발암물질이란 ‘무고’에 시달린다.

현대인에게 ‘왕따’를 당하지만 설탕은 유용한 자원의 보고다. 석탄연료의 대체물로서 자동차 연료, 플라스틱, 섬유, 페인트 등 각종 탄화수소 유도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쌀에 비해 열량이 높고 보존성이 뛰어나 비상용 저장식품으로도 적당하다. 100만t의 설탕은 일년간 무려 1000만명에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또 암, 심장 이상, 뇌졸중을 일으키는 독으로 취급되는 콜레스테롤은 어떤가. 이것이 없다면 성 호르몬 제조가 불가능하고, 지방 분해도 이뤄지지 않는다. 또 혈중 콜레스테롤 대부분이 체내에서 만들어지므로 기름기나 계란을 피하려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 적절한 운동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몇몇 환경 파괴물질과 도매금으로 취급받는 화학물질들의 탄원에도 귀를 기울일만하다. 일급살인자로 여겨지는 다이옥신조차 할 말이 없지 않다. 일상용품이나 음식, 모유에도 들어있는 자연 물질인데도 사람들이 공포에 떤다. 게다가 210종이나 되는 다이옥신 패밀리중 악당 짓거리를 하는 것은 17가지 뿐이다. 그런데도 유독 근래에 와서 시끌벅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닷가에 떨어진 바늘 하나만한 양의 다이옥신도 찾아낼 수 있는 분석과학의 발전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 어설픈 과학지식은 차라리 모르니만 못하다.

저자는 유용한 화학물질은 도리어 환경보호에 기여함을 지적하고 있다. 합성 방향제로 만들어지는 향수만해도 수 많은 꽃과 사향노루, 비버, 향유고래를 살린다. 재스민 앱솔루트 향 1g을 만들기 위해서는 1만5000송이의 재스민꽃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하자. PVC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나무와 석탄이 사라졌을 것인가.

개중에는 변론이 과한 대목도 없지 않다. 예컨대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증가하면 식물 또한 빠르게 자라므로 탄소는 언제나 순환해 일정한 균형을 유지한다’는 주장도 옳다고만 볼 수 없다. ‘PVC가 그다지 심각한 위험물질이 아니라는 근거로 제조공장 근로자 1800명의 근로자 중 암에 걸린 사람은 10명 뿐’이란 통계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소한 흠집잡기에 불과하다. 해박한 사례와 다양한 에피소드는 화학식만 봐도 두통을 일으키는 문외한에게도 색다른 지적 포만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화학지식 바로 알기

▽진통제〓부작용 없는 진통제는 없다. 가장 안전하다는 아스피린도 12세 이하 어린이에게는 인플루엔자 같은 바이러스 감염치료에 쓰이면 치명적일 수 있다. 파라세타몰(상품명 타이레놀)는 효과가 빠르지만 과용땐 독약으로 변한다. 간장이 손상된 알코올 환자, 신경증 환자에게 특히 위험하다. 중독시엔 돌이킬 수 없어 자살용으로도 오용된다.

▽숙취 해소〓상업적으로 성공한 방법은 없다. 원인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분해되길 기다리는 방법 뿐. 사우나에서 땀을 흐리거나,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은 소용없다. 취침전 반 리터의 물을 마시고, 아침식사로 꿀이나 잼같은 단 음식을 먹는 것이 예방에 좋다.

▽최음제〓과학적으로 증명된 사랑의 묘약은 없다. 교미시 열 두 번 사정하는 코뿔소 뿔을 갈아 마시시는 것은 자기 발톱을 먹는 것과 다름없다. 대신 아연(Zn)은 성호르몬 생산을 촉진해 비슷한 효과를 낸다. 카사노바가 애식한 굴을 비롯, 참깨, 초콜릿, 생선 등에 많다.

▼'화학의 변명' 1,2,3/ 존 엠슬리 지음/ 허훈 옮김/ 사이언스북스/ 7500원▼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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