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선생님… 아니네” 간호사 451명 메스 들고 처방전도 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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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보조사 2125명… 6년만에 9배로 늘어

《 다섯 살 난 아이가 급성기관지염에 걸려 서울시내 A종합병원에 입원시킨 이모 씨(36·서울 종로구). 회진을 도는 의사가 두 명이라 이상하게 생각했다. 오전에는 진료를 봤던 의사가, 오후와 저녁 시간에는 흰 가운을 입은 다른 의사가 병실을 찾았다. 오후에 들른 의사는 혈액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아이 상태에 따라 항생제 양을 조절했다. 이 씨는 “당연히 레지던트인 줄 알고 아이 상태에 대해 묻거나 투약 지시에 따랐다. 나중에야 의사가 아닌 줄 알았다”고 말했다. 》
이 씨가 오후에 만난 의료진은 의사가 아니라 PA, 우리말로는 진료보조인력이다. 보통 의사 대신 회진을 돌거나 약 처방을 하는 간호사를 말한다. 병원마다 전담간호사 전문간호사 진료보조사로 다르게 불린다.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간호사 가운데 따로 뽑거나 병원 측이 간호부에서 진료부로 발령을 내기도 한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대한간호협회의 보고서(전담간호사 운영 현황 및 업무 실태 연구)에 따르면 PA는 전국 141개 병원에서 2125명이 근무한다. 2005년 235명에서 6년 만에 9배로 늘었다.

○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보고서에 따르면 PA는 의사 업무의 상당수를 대신한다. PA 704명에게 물었더니 수술 부위 드레싱, 수술 상처 봉합, 카테터(가는 관) 혈관 삽입 등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한다는 응답이 49.7%(350명)나 됐다. 처방전을 직접 발행한다는 응답도 42%(296명)였다.

현행 의료법상 이런 의료행위는 간호사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환부를 꿰맬 때 실을 당기는 행위, 처방된 약의 용량을 조절하는 일은 의사 업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PA의 진료를 받는다.

PA가 의사 명의로 약을 처방하거나 검사와 처치를 해도 환자가 내는 부담금은 마찬가지라는 것도 문제다. 실제 의료행위의 상당 부분을 PA가 했지만 선택진료비는 10년 이상 된 전문의가 했을 때와 같은 비용을 내야 한다.

이번 보고서는 또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거나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표준화된 업무지침이 있다’는 대답은 45.3%(319명)로 절반이 안 됐다. ‘문서화된 위임장을 받는다’는 응답도 10.7%(75명)에 그쳤다.

○ 수술방에서 PA 만날 확률 높아


PA가 가장 많이 근무하는 진료과는 외과(16.4%)로 나타났다. 이어 흉부외과(11.5%) 산부인과(10.7%) 신경외과(7.9%) 정형외과(7.7%) 순이었다. 모두 응급수술이 많고 개업이 어려워 전공의가 기피하는 분야다.

내년에 배정할 흉부외과 전공의(1∼4년)는 전국에서 101명으로 흉부외과 PA(186명)보다 적다. 환자가 심장 수술을 받는다면 의사보다 PA를 만날 확률이 높은 셈이다.

B관절척추병원에서 일했던 의사 정모 씨(45)는 “의사 수에 비해 수술 건수가 많았는데 수술 전후 처치를 PA가 다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살을 째서 뼈와 근육을 드러내는 과정까지를 PA가 해놓으면 의사가 들어가서 뼈를 맞추는 식이었다. 수술 부위를 봉합하고 소독하는 일도 PA가 했다.

○ 양성화 놓고 찬반 엇갈려


복지부는 PA를 양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PA가 이미 상당수 병원과 진료 분야에서 일하는 만큼 자격을 인정하고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취지에서다.

대한의학회는 간호사와 응급구조사가 5년 이상 일하고 의사단체에서 소정의 교육을 받으면 PA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역단체별로 의견이 많이 다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의 고유 업무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한다. 김일호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대형병원이 의사 대신 PA를 고용함으로써 인건비를 줄이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간호협회 조사에서도 500병상 이상 병원에 근무하는 PA가 83.5%(1774명)를 차지했다. 44곳 상급종합병원은 전부 PA제도를 운영한다.

대형 병원들은 “전공의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선 PA를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대한간호협회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이 애매하고 의료사고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아 PA가 불안을 느낀다. 양성화되면 신분이 보장되고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고 찬성 의견을 밝혔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진료보조인력(PA) ::


의사 업무 중 일부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간호사. 영어로 ‘Physician Assistant’의 약자다. 의료법상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 간호사는 간호 및 진료보조를 해야 한다. 수술, 약물처방, 예진과 회진, 환자 상담은 의사의 의료행위이므로 간호사가 할 수 없다. PA가 의사의 지시 없이 회진을 돌거나 약물을 처방하면 의료행위이므로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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