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메커니즘’ 밝혀 노벨상 탔다는데…

  • 입력 2004년 10월 7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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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연구에 노벨상까지야….”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이 인간의 후각 메커니즘을 밝힌 업적에 주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후각은 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결정적인 감각이다. 포유류의 경우 냄새를 담당하는 유전자는 1000여종으로 전체 유전자의 3%에 이른다.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 집단으로는 가장 많은 수다. 후각에 대한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인간은 후각이 퇴화한 포유류=인간의 경우 1000여종의 냄새 수용체 유전자 가운에 실제 작동하는 유전자 수는 375개 정도다. 절반이 넘는 유전자가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가짜 유전자’인 것이다. 인류가 직립해 코가 땅바닥에서 멀어진 이래 후각에 대한 의존도가 줄면서 퇴화됐기 때문이다.

냄새 수용체를 갖고 있는 후각세포의 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사람은 500만개의 후각세포를 가진 반면 양치기 개는 그 44배인 2억2000만개에 달한다. 적어도 후각의 영역에서 사람과 개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삶에서 후각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냄새를 제대로 못 맡는 사람은 늘 배탈과 설사에 시달린다고 한다. 음식이 상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의 90%는 사실 후각이다. 혀로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만 느낄 뿐이다.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힌 경우 음식을 먹어도 무슨 맛인지 잘 모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냄새가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후각정보는 비강 바로 위에 있는 후각구를 거쳐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변연계에 직접 연결된다(그림). 뇌파연구 결과 라벤더나 카모마일 향은 마음을 이완시키는 알파파를 증가시키는 반면 재스민 향은 각성시키는 베타파를 늘린다고 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아로마세러피는 향기의 이런 심리·생리적 작용을 이용하는 자연치료법이다.

▽냄새로 암을 진단=영국 아머셤 병원의 캐롤린 윌리스 박사팀은 냄새로 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런 ‘개코’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개. 연구자들은 1989년 의학저널 ‘란셋’에 실린 재미있는 일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한 여성이 기르던 개가 주인의 피부상처에 미친 듯이 관심을 보여 병원에 가봤더니 피부암이라는 진단을 얻었다는 것.

연구자들은 개가 정말 냄새로 암을 진단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이들은 개 6마리에게 오줌 냄새를 맡아 방광암의 유무를 구별하는 훈련을 7개월 넘게 시켰다. 그리고 방광암 환자의 시료가 1개 포함된 7개 시료의 냄새를 맡게 했다. 그 결과 54번 중 22번을 올바로 선택했다. 성공률 41%. 우연히 맞출 확률인 14%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흥미롭게도 6마리 모두 방광암이 아닌 또 다른 특정인의 오줌에 반응을 보였다. 의아하게 여긴 연구자들이 이 사람을 정밀 진단한 결과 오른쪽 신장에 종양이 발견됐다고. 윌리스 박사는 “개는 오줌에 들어 있는 수백가지 냄새 중에서 방광암 냄새를 집어낸다”며 “이 냄새의 실체를 규명하면 냄새로 암을 진단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 환자의 혈액이나 오줌에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들어있는데 개가 이 냄새를 맡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후각을 재현한다=서울대 응용화학부 박태현 교수팀은 인간의 후각을 칩 위에 재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후각세포 자체로는 아니다. 후각세포는 인체 밖에서 배양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박 교수팀은 이들 유전자 하나하나를 박테리아에 집어넣어 발현시키기로 했다. 그 결과 이들 유전자가 박테리아 표면에서 단백질을 만들어 후각세포에서처럼 냄새분자에 반응한다는 점을 관찰했다. 이 연구 결과는 ‘바이오센서스 & 바이오일렉트로닉스’ 최신호에 실릴 예정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 375개의 냄새 유전자 각각을 집어넣은 375종의 박테리아를 배양하는데 성공하면 인간의 코를 칩 위에서 재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이 완성되면 인간의 냄새정보를 수치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어 질병진단 장비는 물론 화장품, 식품산업 등에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콧구멍으로 들어론 냄새분자는 비강위쪽의 후각상피에 도달한다. 여기 곳곳에 후각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이신경세포에 달려 있는 섬모(오른쪽 사진) 끝에 냄새분자가 달라붙는다. 이 냄새신호는 후각구를 거쳐 뇌의 변연계로 전달된다. -사진제공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강석기 동아사이언스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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