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기억을 담는 그릇'…뇌, 쓸수록 커진다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7시 29분


코멘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바짝 다가왔다. 큰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경우 시험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평소보다 학습능력이 높아진다. 뇌는 자신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생각하는 정보는 우선적으로 저장시키기 때문이다.

뇌에서 학습내용을 저장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는 첫 관문은 바로 대뇌피질 속 가장자리계(변연계)에 있는 ‘해마’라는 신경세포 다발. 해마는 길이 5cm, 지름 1cm로 새끼손가락 크기지만 단기기억 저장소로서 역할뿐 아니라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대뇌피질로 보내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01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에선 해마가 손상돼 새로운 기억을 10분 만에 잃어버리는 주인공 레너드가 부인을 살해한 범인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짧은 기억력을 극복하기 위해 레너드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문신으로 표시하고 만나는 사람을 모두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어 기억을 조각조각 맞춘다. 해마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영화다.

전문가들은 해마뿐만 아니라 해마 주위의 기억과 관련된 뇌를 바로 알고 적절한 자극을 가하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심해진다는 기억력 장애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특징=뇌세포는 20세까지는 발달하지만 이후에는 하루에 5만∼10만여개의 신경세포가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고 건망증도 심해지는 것은 이 때문.

그러나 전문가들은 죽은 신경은 살릴 수 없으나 운동을 하면 근육이 커지는 것처럼 뇌신경세포도 적절한 자극을 주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뇌 세포끼리의 정보교환 통로인 시냅스의 숫자가 근육처럼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개의 신경세포에는 1만여개 이상의 시냅스가 뻗어 나와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된다. 뇌를 자꾸 사용하면 시냅스의 숫자가 늘지만 뇌에 적절한 자극이 없으면 시냅스는 줄어든다. 나이가 들면 심장 간 등 장기의 기능이 60% 이하로 떨어지지만 뇌는 70∼80%의 기능을 유지하는 만큼 평소 뇌를 꾸준히 자극하는 것이 좋다.

▽뇌를 적절히 자극하자=뇌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 기억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생길 정도의 과도한 자극은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한다. 이 호르몬은 해마에 작용해 신경세포를 파괴하며 기억력을 감소시킨다.

해마는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및 동기를 유발하는 이마엽(전두엽)과 수시로 교류하는 회로를 형성한다. 따라서 공부나 일을 할 때 동기를 부여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이마엽과 편도체 해마들이 서로 자극돼 기억력을 높이게 된다. 음악이나 미술감상 등으로 감정의 뇌를 발달시키면 해마도 덩달아 활동이 왕성해진다.

해마를 직접 자극하는 좋은 방법은 하루 20∼30분 정도의 책을 읽고 손에 펜을 잡고 글을 쓰며 주위 사람들과 자주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 또 뇌에 간접적으로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는 체중이 실리는 운동이나 걷기운동을 하루 30분 이상 하는 것이 좋다.

뇌는 활동한 지 30∼40분 지나면 조금씩 활동이 느려지므로 1시간 활동 후엔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특히 수험생이 2∼3시간 계속해 공부를 하면 뇌는 공부한 내용 외에 다른 생각을 집어넣기 때문에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뇌를 보호하자=술은 뇌에 있어서도 독약과도 같다. 많은 양의 알코올은 직접 뇌세포를 죽이기 때문이다.

뇌의 영양분은 아침에 특히 부족해진다. 따라서 아침을 반드시 챙겨먹은 습관은 뇌 건강에 좋다. 뇌는 하루에 400Cal의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그 에너지원은 혈액에서 운반되는 포도당이다. 평소 포도당은 글리코겐으로 간이나 근육에 저장되는데 저장된 글리코겐을 뇌는 12시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전날 오후 7시에 저녁식사를 했다면 이튿날 오전 7시 이전엔 아침밥을 먹어 뇌에 영양분을 공급해야 된다. 이때 식사는 패스트푸드보다는 포도당이 많은 밥이 좋다. 뇌에 적절한 자극을 주기 위해선 식사시간은 30분 정도로 하고, 음식은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잠은 6시간 이상 충분히 자는 것이 좋다. 수면을 취하는 동안 해마는 낮 동안 경험한 온갖 정보 중 꼭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해 장기기억을 할 수 있는 대뇌피질로 보낸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면 반드시 기억해야 될 정보와 필요 없는 정보가 뒤섞여 기억을 하는데 방해가 되며 온종일 ‘멍한 상태’가 지속된다.

(도움말=서울대 의대 약리학과 서유헌 교수, 연세대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오병훈 교수,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