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염전은 해양미생물 보고

  • 입력 2002년 6월 18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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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이 모두 모여 지옥의 극기 훈련을 한다면 미생물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펄펄 끓는 뜨거운 물, 남극의 얼음 속, 식초처럼 강한 산, 산소가 전혀 없는 곳에서도 적응해 사는 미생물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염전이 해양 미생물의 보고(寶庫)로 밝혀져 주목을 받고 있다.

바닷물의 소금 농도는 대략 3.5%. 이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전은 바닷물을 저장하는 저수지, 햇볕에 물을 증발시키는 증발지, 소금이 만들어지는 결정지로 구성된다. 결정지까지 오면 바닷물의 소금 농도는 포화 상태인 35%에 달해 결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결정지의 소금 농도는 이스라엘의 사해(死海)와 비슷하다. 이 호수에서는 물고기는 물론 하등생물인 무척추동물도 몇 종을 제외하고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해라는 말이 붙었다.

그러나 지난 60년간의 연구 결과 사해에서는 높은 소금 농도를 좋아하는 다양한 미생물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양미생물학자인 서울대 조병철 교수가 경기 화성지역의 염전에서 미생물 사냥을 하고 있다.

조 교수팀의 조사 결과 이곳 염전의 결정지에서 박테리아는 봄에는 1㏄당 1억마리, 여름에는 무려 2억7000만마리나 몰려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이는 보통 바닷물의 농도보다 수백 배나 많은 박테리아가 염전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염전에 사는 박테리아는 흔히 바닷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박테리아가 아니라 할로박테리아나 아키박테리아 등 아주 짠물에 적응한 종이다. 이런 극한 환경에서도 박테리아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유기물이 많기 때문이다. 유기물은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 산물에서 비롯된다.

염전의 식물 플랑크톤은 마치 여름철에 적조가 발생했을 때처럼 많다. 결정지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플랑크톤이 듀날리엘라이다. 듀날리엘라는 바닷물과 염전의 짠물에서도 잘 번식한다.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가 염전의 높은 염분 조건에서 적응해 사는 비결은 삼투압을 조절하는 물질을 체내에서 합성하는 것이다. 듀날리엘라는 글리세롤이란 물질을 높은 농도로 합성해 삼투압을 조정한다.

또 염전에 사는 어떤 박테리아는 엑토인이라는 삼투압 조절 물질을 만들어낸다.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이런 특이한 물질을 추출해 의약품을 생산하는 생물공학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이스라엘 NBT사는 사해에서 끌어들인 짠물에서 듀날리엘라를 대량으로 배양해 암과 노화를 예방하는 베타카로틴 건강보조식품을 만들고 있다. 또 독일의 BIOTOP사는 염전의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엑토인을 추출해 피부보습제를 만들고 있다.

조 교수는 “생물다양성은 미래의 자산이다”며 “염전은 염분의 농도가 변화함에 따라 해양 미생물의 분포도 달라져 수많은 생물을 찾아낼 수 있는 곳이지만,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종이 많이 살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 염전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새우양식장으로 전환되는 등 사양길을 걷고 있다. 조 교수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염전을 해양생태공원화 하고 나아가 염전연구공원을 설치해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연구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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