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식품 호기심 천국]유통기한 3년 지난 꿀 검사해봤더니… 세균 있다?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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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이슬 ‘꿀’

《얼마 전 누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모르겠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가끔 음식을 먹다 보면 ‘몰라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알고 싶은’ 궁금증이 생겨나곤 합니다. ‘라면을 끓일 때 면과 수프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넣어야 맛있을까’ 같은 게 대표적이죠. ‘O2’가 이런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드리고자 ‘식품 호기심 천국’이란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필자로는 국내 최고의 식품전문가 네 분을 모셨습니다. 이근배 신세계백화점 상품과학연구소장(식품기술사), 정윤화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정진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약독물과 식품연구실장(이학박사), 오원택 푸드원택㈜ 대표이사(공학박사)가 독자 여러분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 드립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문학가 톨스토이는 ‘참회록’에서 벌꿀을 통해 가련한 인간사를 들려준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 언제 우물 속으로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나그네가 죽음의 공포에 떨다가도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꿀맛을 보고선 행복해 한다는 이야기다. 고대 로마인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꿀을 하늘에서 내려준 이슬로 신성시할 만큼 귀하게 여겼다.

약으로도 사용되고, 고대엔 미라 제작을 위한 방부제로도 쓰였던 귀한 음식. 꿀은 이제 양봉이란 대량 생산체제를 통해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식품이 됐다. 대중식품이 된 벌꿀과 관련한 몇 가지 궁금증을 ‘식품 호기심 천국’에서 풀어본다.

꿀이 왜 좋을까

벌꿀은 벌이 꽃에서 채집한 달콤한 물질(nectar)을 꿀벌이 갖고 있는 자체 효소로 분해한, 포도당과 과당의 혼합물이다. 설탕도 꿀처럼 포도당과 과당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왜 꿀이 설탕보다 좋다는 걸까.

우선 꿀이 설탕보다 열량이 낮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벌꿀은 체내에서 더는 분해할 필요가 없는 단당체로 되어 있어 체내 흡수가 빠르며, 곧바로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화학적 결합을 하고 있는 이당류로 되어 있어 별도의 분해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점 외에도 꿀에는 각종 비타민, 무기질, 단백질이 많이 함유돼 있어 피로해소 등에 좋다.

벌꿀도 오래두면 상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노(No)!’다. 한번은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에서 유통기한이 3년 이상 지난 꿀을 검사해본 적이 있다. 밀봉된 상품이 아니고 한 번 개봉된 제품을 상온에 3년 이상 보관한 것이었다.

우선 향미를 봤더니 꿀 자체의 향기가 좀 강해졌을 뿐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미생물 검사 결과는 더 놀라웠다. 단 한 마리의 세균도 검출되지 않았다. 세균도 곰팡이도 없다니 놀랍지 않은가.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벌꿀은 약 20%의 수분을 제외한 나머지 성분이 포도당, 과당, 자당 등 당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당 함량이 높으면 미생물이 생육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설탕이나 소금으로 식품을 절이면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수분의 활성이 매우 낮아져 세균이 자랄 수 없다. 갈치에 굵은 소금을 뿌려 보관하면 쉽게 상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우리가 구입하는 벌꿀은 대부분 액상 형태인데 이는 자연 그대로의 꿀이 아니다. 채집한 꿀을 가열, 여과 등의 과정을 거쳐 소위 정제한 꿀이다. 벌꿀을 6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당 농도가 높은 식품에 생겨 품질을 떨어뜨리는 당내성효모(sugar tolerant yeast)가 죽게 돼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

꿀은 왜 하얀 결정이 생길까

그런데 꿀을 장기 보관하면 하얀 결정이 생길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처음 딴 꿀은 액체상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설탕입자 같은 흰색 결정이 생성된다. 이 결정체는 벌꿀의 성분 중 과당보다 포도당이 많을 때, 포도당이 벌꿀용액 바깥으로 빠져나와 생성되는 것이다. 이런 결정체가 생성되는 것은 포도당과 과당의 비율뿐 아니라 밀원의 종류, 꿀의 저장온도 등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사실 하얀 결정체는 벌꿀의 품질이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뭉게구름 같은 흰색 결정이 있어도 설탕이 섞인 게 아닌가, 또는 변질된 게 아닌가 등의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결정체 생성은 꿀을 12∼14도로 저온 보관할 때 일어난다. 과당보다 포도당 함량이 비교적 높은 유채꿀, 싸리꿀, 잡화꿀 등은 저온상태에서 결정이 잘 생긴다. 과당 함량이 포도당보다 높은 아카시아꿀, 밤꿀, 대추꿀에선 결정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

꿀은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가?


꿀은 식품영양적 기능 외에 피부미용에도 좋다. 마누카꿀은 항균작용을 해 항바이러스 용도나 상처치료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벌꿀이 과연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을까. 혹시 주의할 점은 없을까.

우선 꿀은 포도당과 과당 등 당류가 약 80%나 되는 고당식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당류 섭취를 조심해야 할 당뇨병환자나 비만한 사람은 적게 섭취하는 게 좋다. 그리고 시중에 유통되는 액상의 벌꿀 제품들은 대부분 65도에서 30분 이상 살균처리한 것이라 문제가 없겠지만, 천연벌꿀이나 수입산 벌꿀 가운데 살균처리하지 않은 꿀에는 유해미생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살균되지 않은 벌꿀 속에 소량의 세균이라도 존재한다면 특히 유아들에겐 매우 위험하다. 유아의 위장에선 강한 위산이 분비되지 않아 유해세균이 잘 죽지 않는다. 따라서 생후 1년 미만의 유아에게는 이런 종류의 꿀을 섭취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근배 신세계백화점 상품과학연구소장 (식품기술사) kblee0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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