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파이어니어]로펌 「김&장」 박병무변호사

  • 입력 1999년 5월 12일 09시 41분


코멘트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기업이 회생책 마련을 위해 그에게 황급히 도움을 청한다. 유망한 한국 기업을 인수하고 싶은 외국기업도 수시로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기업변호사 생활 10년. 결코 길지 않은 경력이다. 하지만 기업과 법조계에선 그가 숱한 한국 기업을 살려내고 한국 로펌(법률회사)의 국제 경쟁력을 한단계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한다.

박병무(朴炳武·38)변호사.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에서 기업금융 인수합병(M&A)팀을 이끌고 있다. 95년이후 제일물산 OB맥주 미도파 한화종금 등을 놓고 빚어진 한국내 ‘적대적’ M&A 사례 10여건을 도맡아 처리해 ‘기업사냥터의 중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내가 가야할 길★

박변호사라고 사회적 존경과 권력을 거머쥘 수 있는 판 검사 자리가 탐나지 않았을까.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에다 사법연수원 졸업성적 5등. 원하는 자리를 얼마든지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싶어’ 기업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로펌이란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80년대 중반 정치적인 분위기도 공복(公僕)에 대한 미련을 털어버리게 했다.

‘오늘의 박변호사’에겐 90년대 초 일본 미쓰이(三井)상사측과의 만남에서 얻은 경험이 더없이 소중하다.

“의외였지요. 상당히 실무적인 문제로 머리를 맞대야하는 회의였는데 출장 온 상대방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부장이나 초임 이사급이었어요. 그런데 이들이 구체적인 통계에서 과(課)단위 세세한 업무사항까지 줄줄이 꿰고 있더군요. 한국에선 과장급이나 가능한 일인데요.”

진정한 프로가 되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거대한’것 못지않게 ‘세세한’것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그날 이후 늘 ‘현장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한국사회의 장래도 각 분야에 ‘디테일(detail)에 강한 지도자’를 얼마나 배출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일과 함께한 10년★

그는 ‘고도의 전문가’이기 이전에 ‘철저한 일꾼’이다.

지난해 대상그룹(옛 미원그룹)이 동물성장 촉진제인 라이신 사업 분야를 독일 바스프(BASF)사에 매각할 당시의 이야기.

“거래 막바지에는 36시간을 연속해서 일에 매달린 적도 있어요. 퇴근해서도 두어시간 눈 붙이고 나와 다시 협상안 정리하고 세부계획 확인하고…. 낮에는 대상측과 일하고 밤에는 독일측과 전화회의를 열면서 의견을 조율했죠.”

M&A과정에서 기업을 파는 쪽이나 사는 쪽 모두가 “‘남는 장사’를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절충안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강점. 고도의 합리성과 신뢰감 있는 일처리 방식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나의 꿈, 나의 미래★

미국 하버드대에서 돌아온 95년이후 박변호사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기업구조조정’이다. 그는 철저한 기업중심주의자다. 건전한 기업이 살아나야 나라와 국민도 잘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박변호사의 이같은 ‘기업중심적 사고’에 대한 가장 큰 비판자는 서울대 법대 2년 후배로 회사법을 전공한 아내 윤영신(尹榮信·36)박사다.

박변호사가 고문변호사로 있는 삼성전자가 주주총회를 열었을 때 이들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대화내용만 들어보면 저는 기업활동을 최대한 보장하자는 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孔炳淏)소장쪽이고 아내는 참여연대의 장하성(張夏成)교수쪽일 겁니다. 아내는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의 입장에 찬성하는 쪽이지요.”

그의 꿈은 몸담고 있는 김&장이 미국계 법률회사와겨룰수있는 초일류 법률회사로 성장하는 것. 다양한 시각을 얻기위해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정부 관련 부서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물론 연봉이 지금보다 상당히 낮아지겠지만 그에게는 “‘도전’과 ‘성취’가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필★

1961년 대구출신. 서울 대일고를 거쳐 80년 서울대에 수석입학한 뒤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했다.

사법연수원시절 야간대학원을 다녔고 군법무관시절에도 법과대학원을 다닌 학구파. 94년부터 미국 하버드 로스쿨에서 2년간 기업금융, 제삼세계 금융시스템 개선방안 등을 연구했다. 석사학위가 모두 3개. 미국 뉴욕주변호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점심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두세차례 사무실부근 헬스클럽을 찾는다. 토요일 오후면 배낭하나 짊어지고 ‘나홀로 북한산행’을 떠나는 것이 취미. 너무 바빠 신문 잡지 TV를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여서 스스로 ‘세상 따라잡기’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 아이들과 함께 일요일을 보내기 위해 2년반전 눈 딱 감고 골프를 중단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