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진단한 ‘아내의 유혹’ 극단 캐릭터들

  • 입력 2009년 4월 20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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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정말 제 정신이야?" "미쳤어, 미쳤어." "정상이 아닌 거 같아."

요즘 식당이나 어디서 TV 드라마를 보다보면 이런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을 위해 동생을 죽이려는 형('카인과 아벨')이나 남편 동료와 바람피우는 아내('내조의 여왕') 같은 극단적인 캐릭터가 사극도 아닌 현대극에 버젓이 나온다.

그 정점엔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해 다음달 1일 종영을 앞둔 이 작품은 '살면서 한번을 만나기도 어려운 인물'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명 나온다. 악역은 물론 주인공이나 착한 캐릭터도 평범한 사람 기준에선 고개가 저어진다.

그렇다면 이들 캐릭터가 실제 정신과 의사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지난해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인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장)에게 '아내의 유혹' 대표적 비정상 캐릭터 4명의 분석을 외뢰했다. 김 소장은 "현실적으로 면담 인터뷰도 없이 병세를 판단하진 않는다"면서 "이 인물들 역시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캐릭터라는 점을 감안해 말과 행동 패턴으로 추정해봤다"고 말했다.

b> ●구은재(장서희)=과다 자기애가 넘치는 인격 장애

주인공 구은재는 이 드라마의 도덕적 잣대가 되는 인물. 결혼 생활에 헌신적이었으나 배신한 남편과 연적에게 복수를 꿈꾼다. 흔히 트라우마라 부르는, 큰 사고 뒤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보기 쉬우나 이 캐릭터는 애초부터 문제점이 컸다.

모든 일에 희생하는 순종성은 극단적인 자기애로 인해 형성된다. 억울함마저 참아내고 모든 걸 초월한 듯한 태도는 "난 너희와 다르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바탕에 깔린 것. 일종의 인격 장애에 해당하는 '메조키스틱 나르시스틱 퍼스낼러티(masochistic Narcissistic Personality)'를 가졌다. 복수도 이런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을 죽이려 함으로써 생존의 마지막 방어기제를 건드려 '폭발'을 불러일으킨 것. 복수에 모든 걸 쏟아 붓는 비현실성도 과도한 자기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치료법: 2~3년간 정신분석 치료가 필요하다. 심층면담을 통해 자기 문제를 깨닫는 게 우선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b> ●신애리(김서형)=사이코패스로 확대될 수 있는 반사회적 히스테리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며, 친구 남편을 빼앗는다. 범죄에 가까운 악행을 저지르고도 후회나 죄책감이 없다. 이 정도면 인격이나 양심의 영역인 '초자아(superego)'에 문제가 있다. 흔히 이를 초자아에 구멍이 뚫렸다는 뜻으로 '수퍼 에고 라쿠나(superego lacuna)'라 부른다.

특히 모든 잘못을 타인의 탓으로 넘기는 '투사(projection)'의 성향이 크다. 이들은 충동조절이 안 돼 사회적으로도 위험하다. 즉 '안티 소셜 히스테리(Anti Social Hysterie)'의 징후가 강하게 느껴진다. 심하면 '사이코패스'로 발전할 수도 있다.

○치료법: 치료가 불가능해 보인다. 폐쇄병동에서 격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충동을 조절할 진정제를 장기간 투입해야 할 듯.

b>●정교빈(변우민)=아버지에 억눌려 뒤틀린 정서장애

가장 이해가 어려운 캐릭터. 아버지 앞에선 주눅이 늘어 수동적이지만, 애정을 위해선 천륜도 저버리는 인물이다. 이런 캐릭터는 드문 경우로 수동성과 공격성이 뒤섞인 '패시브 어그레시브 퍼스낼러티(Passive Aggressive Personality)'로 부를 수 있다.

이는 다혈질에 가부장적인 부와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로 인해 인성 자체가 뒤틀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성인이 돼 애정, 특히 성적인 문제만 맞닥뜨리면 도덕적 기준도 없이 집착한다. 드라마 초기에 아내(구은재)를 바다에 빠트려 죽이려는 행동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돈 주앙이나 카사노바도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이와 비슷한 영향을 받았다.

○치료법: 답이 없다. 본인은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간 약물치료와 면담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 같다.

b> ●민소희(채영인)=색적(色的) 망상이 가득한 편집증

가지고 싶은 건 모두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의붓오빠 건우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을 드러낸다. 누구보다 '환자'임이 명확한 캐릭터다. 한마디로 '파라노이드 디스오더(paranoid disorder)', 즉 편집증이다.

특히 의붓오빠와의 사랑에 매달리는 것은 근친상간에 가까운 '색적 망상(Sexual delusion)' 증세다. 병적인 스토커로 발전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치료법: 향정신병약물을 투여하는 게 좋겠다. 치료 시에는 환자에게 병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어느 쪽이건 치우치면 더 극단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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