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탈이 해결사…불규칙 정도 파악해 조기진단 치료에 활용

  • 입력 2004년 2월 22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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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장박동 패턴에서도 프랙탈이 발견된다. 몇 분 동안 관찰한 심장박동의 불규칙한 패턴은 하루 종일 관찰한 패턴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심장을 소재로 ‘세부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돼 전체 구조를 이루는’ 프랙탈 모형.  -사진제공 브리안 에번스
사람의 심장박동 패턴에서도 프랙탈이 발견된다. 몇 분 동안 관찰한 심장박동의 불규칙한 패턴은 하루 종일 관찰한 패턴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심장을 소재로 ‘세부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돼 전체 구조를 이루는’ 프랙탈 모형. -사진제공 브리안 에번스
‘인체에서 프랙탈(fractal)을 찾아라.’

물리학자들에게 떨어진 특명이다.

프랙탈은 세부구조를 확대해 볼수록 전체구조와 유사한 형태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복잡한 구조를 말한다. 예를 들어 구불구불한 해안선에서 일부 지역을 확대하면 전체 해안선과 유사한 모습이 관찰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프랙탈을 자연의 경관뿐 아니라 인체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파킨슨병 환자의 불안정한 걸음걸이,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 그리고 우울증 환자의 뇌파가 그것. 프랙탈은 조만간 인체 질환의 조기진단과 치료에 활발히 활용될 전망이다.

최근 미일 물리학자들은 파킨슨병 환자들의 걷는 양상을 프랙탈 모델로 분석할 수 있는 휴대용 기기를 만들고 그 연구내용을 미국 ‘신경공학지’ 온라인판에 게재했다.

파킨슨병은 치매와 함께 대표적인 노인성 뇌질환으로 꼽히는데 1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 주요 증상의 하나는 운동기능의 장애. 특히 걸을 때 첫걸음을 떼기는 어려운데 일단 걷기 시작하면 보폭이나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환자의 특이한 보법을 분석한 결과 몇 분 동안 관찰한 걸음걸이 양상이 하루 종일 관찰한 양상과 유사하다는, 즉 프랙탈 패턴이 관찰된다는 점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연구진은 환자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걷는 속도와 보폭 등에 관한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컴퓨터로 분석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또 불규칙한 정도에 따라 값이 증가하는 프랙탈 지수를 걸음걸이에 대해 계산했다. 그 결과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 이 지수가 1.48로, 1.3의 값을 갖는 정상인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를 이용하면 환자들의 증세가 심해지는 정도를 객관적인 수치로 표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약을 투여할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약 복용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

심장도 프랙탈 연구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건강한 심장일수록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뛰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박동한다. 다양한 환경에 대응해 온몸에 혈액을 공급하는 속도를 그때그때 조절하는 본능적인 보호작용이다.

한양대 의대 소아과학교실 염명걸 교수는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심박동 패턴이 다르다”며 “프랙탈 지수로 나타내면 질환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다양한 값이 나온다”고 말했다.

염 교수는 지난해 태아 450명의 심박동수를 측정해 프랙탈 모델로 분석한 결과를 미국의 권위있는 학술지 ‘소아과학연구지’ 6월호에 게재한 바 있다.

그는 “아직 임상적으로 적용할 만큼 충분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산모의 뱃속에서부터 심장의 이상을 감지할 수 있는 조기진단장치 개발이 목표”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성인 고혈압 환자 중에 상당수가 태어날 때 저체중이라고 한다. 만일 저체중인 태아의 심박동 특성을 관찰한다면 성인이 됐을 때 고혈압에 걸리는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

1997년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세계생체의용공학회’에서는 한 비뇨기과 의사가 남성 성기의 발기 정도를 프랙탈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건강한 사람일수록 성기의 혈관에서 혈액이 불규칙한 속도로 흐른다고 주장해 참석자들이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프랙탈은 우울증이나 치매환자 등의 정신질환 치료에도 유용할 전망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정재승 박사는 “치매는 뇌 혈관이 막혀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와 특정 단백질이 마치 치아의 플라크처럼 신경세포를 뒤덮어 생기는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있다”며 “뇌파를 측정하면 각각의 프랙탈 패턴이 달라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려워 정확한 치료제 처방이 어려웠던 것.

정 박사는 “인체의 프랙탈 신호를 찾아 의학에 적용하는 연구가 20여년 됐다”며 “특히 뇌의 신비를 밝히는 데 응용할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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