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 게임’ 의료수가 논란 해결책은…

  • Array
  • 입력 2010년 6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산부인과 올리고 병리-안과 깎고… 파장 예고

병리과 전공의 파업-안과 효력정지가처분 소송
“산부인과 인상분 메우려 삭감” vs “예정된 것”
정책관계자 “약값 낮게, 의사행위료 높게 갈 것”

종합병원의 한 병리학 의사가 인체에서 떼어낸 부위를 현미경으로 보면서 암 여부를 판독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병리과의 조직검사 수가를 7월부터 15% 내리기로 하자 병리과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이는 등 반발하고 있다.사진 제공 서울대병원
종합병원의 한 병리학 의사가 인체에서 떼어낸 부위를 현미경으로 보면서 암 여부를 판독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병리과의 조직검사 수가를 7월부터 15% 내리기로 하자 병리과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이는 등 반발하고 있다.사진 제공 서울대병원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산부인과 자연분만 수가를 2년에 걸쳐 50% 인상하기로 했다. 저출산 탓에 산모가 급감해 경영난을 겪던 산부인과로선 숙원을 푼 셈.

그 대신 건정심은 병리과의 병리조직검사 수가를 7월부터 15% 깎고 안과의 백내장수술 수가는 3년간 단계적으로 평균 10.2% 깎기로 했다. 또 보건복지부는 연내에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촬영,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 수가도 조정할 예정이어서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약 주고 병 주고=이번 수가 인상으로 산부인과는 정상분만(초산)의 경우 현재 29만6100원에서 2011년엔 44만4150원을 받는다.

건정심은 각종 암을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인 병리조직검사 비용을 7월부터 15% 인하하기로 했다. 낮은 수가로 병리과의 전공의(레지던트) 기피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 조치가 내려지자 대부분 병원의 병리과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안과의 경우 현재 개업 기준으로 백내장 수술 수가는 99만4740원에서 81만7650원으로 17만7090원(17.8%) 깎였다. 안과 개원의들은 수가 인하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이성기 대한안과의사회 회장은 “새 장비와 새 기술 덕에 기존에 수술하지 못했던 환자의 수술이 늘어난 것은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수가만 내리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건정심은 MRI와 CT도 보험급여가 급격히 늘자 수가 인하를 위한 평가에 착수했다. 암을 진단하는 데 사용하는 PET도 현재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복지부는 올해 말 분석을 마친 뒤 건정심에 수가 인하를 검토하도록 할 예정이어서 내년 초에도 한 차례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수가를 인하하면 환자는 본인 부담금을 그만큼 적게 낼 수 있다.

▽수가 조정 예견된 것=의사들은 산부인과 수가의 인상분을 메우기 위해 병리과와 안과의 수가를 낮췄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병리과 안과의 수가 조정이 예고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2008년 병리조직검사 수가를 조정하면서 1년 동안 건강보험 청구 현황을 조사해 자연 증가분 이상으로 늘어날 경우엔 수가를 재조정하기로 병리과학회와 수차례 사전협의했다”며 “지난해에는 2008년보다 327억 원이 추가 지급됐는데 이 중 171억 원만 깎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가를 올려준 셈”이라고 말했다. 또 안과 수가 인하도 이미 한 달 전에 고시한 내용이라는 것.

하지만 서정욱 서울대병원 병리학 교수는 “병리과의 올해 지원율이 40%로 비인기학과가 된 상황인데 이번 수가 인하는 큰 타격”이라며 “수가 총액이 증가했다면 임상 의사에게 조직검사 빈도를 줄이라고 하거나 불필요한 검사를 삭감하는 조치를 해야지 수가를 인하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말했다.

▽“약값, 진단비 등은 낮추겠다”=의료 수가 논란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은 건보 재정은 한정돼 있는데 나가는 돈은 매년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체 파이는 거의 일정한데 산부인과 수가를 올려주면 추가 재정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은 다른 과의 수가를 깎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저보험료-저수가인 건강보험 체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낮은 수가는 최근 산부인과처럼 분만을 기피하거나 레이저 시술이나 비만 치료 등 비보험 치료에만 의사들이 몰리는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국민의 심리적 저항이 크기 때문에 당장 거론하기 어렵다.

박하정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앞으로 약값과 재료비, 검사비는 점차 낮추고 의사들의 행위료에 대해서는 수가를 높이는 방향으로 갈 예정”이라면서 “제왕절개, 백내장 수술 등 일부 질환에서 시행하는 포괄수가제도 점차 그 대상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건강보험 재원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건강보험 지출이 확대될 수밖에 없어 무작정 보험료를 올릴 수는 없다”며 “의료비용을 증가시키는 담배, 술에 대한 세금을 올려 건강증진기금을 확보하고 이를 건보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