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뽑으면 버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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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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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뼈 만드는 보강재… 치아은행 보관후 노년때 이식수술 활용

사랑니 등 못 쓰게 된 치아를 이용해 만든 골이식 재료. 단단한 치아도 특수 처리과정을 거치면 칼로 잘릴 만큼 부드럽게 변한다. 이 조직을 이식하면 약해진 턱뼈를 보강할 수 있다. 사진 제공 한국자가치아뼈은행
사랑니 등 못 쓰게 된 치아를 이용해 만든 골이식 재료. 단단한 치아도 특수 처리과정을 거치면 칼로 잘릴 만큼 부드럽게 변한다. 이 조직을 이식하면 약해진 턱뼈를 보강할 수 있다. 사진 제공 한국자가치아뼈은행
주부 정승숙(가명·64) 씨는 지난해 어금니 하나가 빠졌다. 인공치아를 턱뼈에 심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려 했지만 고민이 생겼다. 풍치로 약해진 턱뼈를 보강하려면 ‘골이식수술’을 해야 하는데, 동물 뼈를 몸속에 집어넣는 게 꺼림칙했다. 턱뼈 보강재로 흔히 소뼈를 쓰기 때문이다. 최근 정 씨는 새로운 수술법을 소개받았다. 먼저 치과병원에서 사랑니를 뽑았다. 치과병원에선 사랑니를 특수 처리해 말랑말랑한 덩어리로 바꾸고, 30%는 가루로 만들었다. 열흘 후 수술 날이 되자 의사는 인공치아가 다소 흔들렸지만 일단 잇몸에 심었다. 그리고 잇몸 주변의 빈 공간을 사랑니로 만든 보강재를 잘라 메우고, 미세한 틈은 가루로 채웠다. 2∼3개월만 지나면 보강재는 잇몸 뼈와 합쳐지며 진짜 뼈로 변한다. 쓸모없는 치아로 간주되던 사랑니가 귀한 잇몸으로 거듭난 것이다. 부러지거나 충치 등으로 뽑은 치아도 같은 방식으로 쓸 수 있다.

이러한 ‘자가치아뼈이식술’은 국내 치과의사 세 명이 세계 최초로 함께 개발했다. 김경욱 단국대 치과병원 구강외과 교수(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 이사장), 김영균 분당서울대병원 구강외과 교수, 엄인웅 인치과의원 원장은 2008년부터 공동연구를 통해 이 수술법을 개발했다. 이들은 치아와 턱뼈 성분이 거의 같고, 섞어 놓으면 진짜 뼈처럼 굳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이 수술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올 들어 국제치과학술지인 ‘트리플오’ 3월호에 발표되기도 했다. 엄 원장은 “전국적으로 1000여 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며 “이가 빠지면 버리지 말고 식염수에 담가 병원으로 가지고 오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시술엔 단점도 있다. 이미 많은 치아를 잃어버린 노인들은 혜택을 받기 어렵다. 김경욱 교수는 “나이들 때를 대비해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치아를 은행에 보관해 두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단국대 치과병원에는 ‘한국자가치아뼈은행(KABB)’ 본부가 설립돼 있다. 치아는 5년간 보관할 수 있으며 재처리를 하면 몇 번이고 다시 보관할 수 있다. 가족의 치아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조선대 치대와 분당서울대병원은 14일 ‘가족치아은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주대병원, 고려대구로병원, 강동성심병원, 상계백병원에도 치아은행이 있다.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22일 충북 청주시 라마다플라자호텔에서 열리는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 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엔 일본 치과협회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이 기술을 배워 일본자가치아뼈은행(JABB)을 설립하기 위해서다. 김경욱 교수는 “국제특허를 가지고 있는 만큼 세계시장에서 로열티 수익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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