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자살원인 1위는 ‘성적’… 학업 스트레스 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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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위험하다]<上>자살 현황

《 지난해 6월 자살한 A 군(17)은 평소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친구나 교사와의 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공들였던 특정 자격시험을 망친 뒤 ‘화가 난다’ ‘노력해도 점수가 안 나올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우울해 했다. A 군은 질책하는 부모와 크게 싸우고 며칠 뒤 목을 맸다. 국내 중고교생 중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이 가장 많이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민은 A 군의 사례처럼 ‘성적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4일 한림대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가 교육부의 자살한 학생의 담임교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한국 중고교생들이 자살을 택하게 만든 주요 고민거리로는 성적 문제, 우울감, 가정 내 갈등, 친구 간 갈등 등이 꼽힌다. 고교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갈등을 소재로한 영화의 한 장면(왼쪽 사진)과 현직 교사들이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교육 현실을 자성하기 위해 마련한 퍼포먼스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한국 중고교생들이 자살을 택하게 만든 주요 고민거리로는 성적 문제, 우울감, 가정 내 갈등, 친구 간 갈등 등이 꼽힌다. 고교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갈등을 소재로한 영화의 한 장면(왼쪽 사진)과 현직 교사들이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교육 현실을 자성하기 위해 마련한 퍼포먼스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 자살 학생 대부분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

한림대 연구팀은 교육부 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지난해 자살한 118명의 중고교생 중 89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자살 당시 겪었던 고민이 대략적으로 파악된 학생 수는 75명. 이들 중 △성적 문제(26.8%) △우울감(21.1%) △가정 내 갈등(18.3%) △친구 간 갈등(7.7%) △이성 문제(6.3%) 순으로 많은 고민을 겪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성적 문제로 자살하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10명 중 2명(18.7%)은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속했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을 한 청소년들이 겪었던 고민으로 학교 성적 문제가 꼽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며 “그만큼 한국 청소년들의 학업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건 자살한 학생 중 상당수는 이른바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 상태, 경제적 여건, 거주 형태 등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자살 중고교생 중 경제적 수준이 ‘상’ 또는 ‘중’ 수준인 경우가 각각 10.1%와 65.2%였다. 또 65.2%는 ‘친부모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정신질환을 앓은 비율도 19.1%에 그쳤다. 정서상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목적인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도 64%는 정상으로 나왔고 ‘일반 관리군’(15.7%)과 ‘우선 관리군’(11.2%)은 합쳐서 26.9%였다.

○ 청소년 자살과 고민에 대한 관심과 관리 강화

자살한 중고교생의 대부분은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89명 중 14명(15.7%)만이 유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도 중고교생들이 자살이란 극단적인 상황을 선택하면서도 ‘특별한 위험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 교수는 “자살 청소년의 대다수가 겉으로 봤을 때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라며 “청소년 자살 혹은 고민의 위험성을 상대적으로 주변인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서의 내용은 주로 자신의 심정, 특히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인들에게 ‘미안하다’와 ‘사랑한다’ 등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체적인 상황이나 자살 동기 등을 설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연구팀은 초등학생 자살에 대한 분석도 진행했다. 2011∼2014년 사이에 자살한 초등학생은 총 16명. 이들 중 자살 당시 겪었던 고민으로는 △가정 내 갈등(38.5%) △우울감과 성적 문제(각각 23.1%) △친구 간 갈등(15.4%) 순으로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등학생 자살자 역시 중고교생들처럼 건강 상태, 경제적 여건, 거주 형태 등은 양호한 편에 속했다.

홍 교수는 “초등학생 자살의 경우 사례 자체가 많지 않지만 초등학생도 결코 자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우울감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생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면 이들이 나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중고생#자살원인#성적#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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