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입자물리학 세계적 권위 43세 김영기 시카고大교수

  • 입력 2005년 6월 8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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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호암상 과학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김영기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 시카고 근교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전 세계 850여 명의 과학자를 이끌며 우주의 생성비밀을 캐내고 있다. 그는 1977년 미국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천재 물리학자 고 이휘소 박사의 학맥을 잇고 있기도 하다. 김미옥 기자
제15회 호암상 과학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김영기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 시카고 근교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전 세계 850여 명의 과학자를 이끌며 우주의 생성비밀을 캐내고 있다. 그는 1977년 미국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천재 물리학자 고 이휘소 박사의 학맥을 잇고 있기도 하다. 김미옥 기자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김영기(金령璂·43)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소개할 때 항상 이런 화두를 던진다. 누구나 의문을 품어보지만 속 시원한 해답을 찾기란 힘들다. 김 교수는 이 물음에 매달린 전 세계 물리학자들 중 선두에 서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그를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하고 있다.

호암재단(이사장 이현재·李賢宰)은 김 교수를 제15회 호암상(湖巖賞) 과학분야 수상자로 선정했다.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1일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김 교수는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6일 출국했다. 2일 고려대 과학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호암상 수상 강연회장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충돌의 여왕.’ 그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디스커버’가 2000년 10월호에 ‘향후 20년간 세계 과학발전을 주도할 20명의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김 교수를 소개하면서 붙인 별명이다. 무슨 뜻일까.

“물질을 이루는 소립자인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충돌시키는 게 제 연구과제죠. 여기서 나오는 조각들을 조사하면 150억 년 전 대폭발로 시작된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어요.”

김 교수는 지난해 6월 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물리 실험기구를 갖춘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의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실험그룹(CDF)’ 공동대표를 맡았다. 12개국 62곳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모인 전문가 850여 명의 실험을 총지휘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김 교수는 ‘전문가들의 충돌’을 조정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나 보다.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니 의견이 엇갈리기 일쑤다. 김 교수는 이런 분위기에서 동료들로부터 투표를 통해 대표로 선발됐다.

김 교수의 화려한 경력을 생각하면 천재 소녀로 자랐을 어린 시절 모습이 짐작된다. 하지만 김 교수는 “너무 평범하게 성장했다”며 “다만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북 경산시에서 1남 5녀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고려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지만 처음부터 공부에 몰두하던 과학도는 아니었다.

“2학년까지 탈춤반에서 활동하며 신나게 지냈어요. 이때 선후배끼리 진지하게 고민하고 끌어 주던 끈끈한 인간관계를 배웠습니다. 현재 연구팀을 끌어가는 리더십의 비결은 대학시절에 배웠지요.”

물리학의 매력에 눈을 뜬 것은 4학년 때 강주상(姜周相) 교수의 ‘양자역학’ 강의를 듣고부터다. 강 교수의 지도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이때부터 우주는 어떻게 시작됐는지, 우리의 몸은 어디서 왔는지 등 근본적인 질문을 ‘물리학의 창’으로 해답을 얻는 일에 빠져들었다.

연구에만 몰두해서인지 3년 전에야 결혼했다. 남편은 같은 시카고대 물리학과의 시드니 네글 교수. 결혼식은 대구에서 전통혼례로 치렀다.

김 교수가 몸담고 있는 페르미연구소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고 이휘소(李輝昭) 박사가 이론물리부장을 맡았던 곳. 김 교수의 석사논문을 지도한 강 교수는 바로 이 박사의 수제자여서 이 박사의 학맥을 정통으로 잇고 있다. 김 교수는 “학문적으로는 이휘소 박사의 손녀 격인 셈”이라며 “한국인 첫 노벨상 수상자로 손꼽히던 대선배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박사가 못 푼 노벨상의 꿈이 언젠가 김 교수에 의해 이뤄지지 않을까. 하지만 김 교수는 “과학의 진보는 수많은 과학자의 땀방울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한 개인이 노벨상을 탐내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전 세계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입자가속기를 2010년경 착공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소립자 세계의 밑그림을 완성할 장비를 마련하는 데 6조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해요. 하지만 어느 나라에 세워질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입자가속기가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제가 귀국해 연구에 참여하기를 꿈꾼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요.”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김영기 교수는▼

△1962년 경북 경산시 출생

△1984년 고려대 물리학과 졸업

△1986년 고려대 물리학과 석사

△1990년 미국 로체스터대 박사

△1990∼1996년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연구원

△1996∼200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2003년∼현재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

△2004년∼현재 미국 페르미국 립가속기연구소 CDF 공동대표

△좌우명: 결과에 솔직하게 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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