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차 진단醫 뒀지만… 정신병원, 웬만해선 퇴원 안시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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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개정법’ 시행 두달째
6월 심사받은 환자중 1.3% 퇴원… 법 시행후 신규환자 퇴원 0.4% 그쳐
의사들 “복귀시설 부족해 못 내보내”… 인권단체 “자해-타해위험 범위 넓어”

11년 전 알코올의존증으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뒤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은 50대 A 씨는 이달 초 ‘드디어 퇴원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환자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없으면 퇴원시키도록 정신병원 강제 입원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씨를 심사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고심 끝에 ‘계속 입원’ 판정을 내렸다. 사회복귀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A 씨를 퇴원시켰다가 만에 하나 사건·사고에 휘말리면 이를 결정한 의사에게 화살이 돌아올 것을 우려해서다.

주치의가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을 막기 위해 ‘2차 진단 전문의’를 따로 두도록 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이 5월 30일 시행됐다. 하지만 환자 대다수는 A 씨처럼 강제 입원 생활을 이어가는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보건복지부가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정신병원에서 주치의의 강제 입원 결정에 따라 2차 진단 전문의의 심사를 받은 2만5991명 중 퇴원한 환자는 350명(1.3%)에 불과했다. 2차 진단 전문의는 자해·타해 위험이 없는 환자를 주치의가 병원에 붙잡아두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하지만 대다수가 주치의의 결정을 그대로 따른 셈이다. 특히 법 시행 이후 새로 입원해 심사를 받은 환자 5553명의 퇴원율은 0.4%에 그쳤다.

의료계에선 퇴원 환자를 보살필 사회복귀시설이 부족한 탓에 의사들이 ‘소신 진단’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증상이 심했던 환자도 퇴원 후 일정 기간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며 외래 진료를 꾸준히 받으면 재발을 막을 수 있지만 이를 보장해줄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5년간 치료감호소에 수용됐던 한 40대 조현병 환자를 심사한 전문의는 “치료를 성실히 받은 덕에 자해·타해 위험이 전혀 없는 환자였지만 외래 진료를 적극 관리해줄 시설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퇴원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행 복지부의 입원관리 시스템에선 의사가 자해·타해 위험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평가해도 강제 입원시킬 수 있다.

환자 인권 단체는 복지부가 제시한 ‘자해·타해 위험’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한다. 복지부가 지난달 20일 배포한 매뉴얼에선 △위생 및 청결 문제로 감염병에 걸릴 위험이 있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할 위험이 있거나 △1년 내에 자해 시도 경험이 있는 경우도 ‘자해·타해 위험’에 포함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김도희 변호사는 “새 매뉴얼은 자해·타해 위험의 범위를 ‘급박한 경우’로 한정한 시행규칙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2차 진단이 ‘블라인드’로 이뤄지지 않아 누가 주치의의 판단을 뒤집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특히 정신병원이 적은 지방에선 특정 병원끼리 서로 2차 진단 전문의를 출장 보내는 구조여서 ‘상호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대로 2차 진단 인력이 부족해 입원이 꼭 필요한 환자를 내보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 M병원은 12일 강제 입원한 환자 3명을 26일 퇴원시켰다. M병원에 2차 진단의를 출장 보내야 하는 G병원이 출장을 두 차례 거절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추가 진단 없이 2주(입원 첫날은 제외) 이상 강제 입원시키면 새 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G병원 관계자는 “우리 환자를 돌볼 시간도 부족해 의사를 출장 보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손이 부족해 환자를 일단 퇴원시켰다가 다시 입원시키는 방식으로 처벌을 피하는 ‘꼼수’를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정신건강 개정법#정신병원#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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