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떠올라… 털모자 써야 잠드는 내 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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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살인’으로 바뀐 일상]그날 엄마들 카톡에선…
“애 본 사람 있어?” “경찰 깔렸어”… 실시간으로 범죄 과정 퍼져 충격

범행장소가 다 아는 곳인데…
옥상 등 갈때마다 섬뜩한 기분…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옆동 가기도

악몽에 시달리는 주민들
불 켠 채 거실에 모여 잠 청해… 범행 막지못했다는 죄책감도

“A 양 엄마가 아이를 찾는데, 데리고 있는 사람 있어?”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대화방) 대화가 시작된 건 3월 29일 오후 4시 반경.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 피해자 A 양(8)이 살았던 아파트 이웃 엄마들의 단톡방이다. A 양이 사라지고 약 4시간 후부터 관련 대화가 오갔다.

“○○네 집에서 잠든 거 아냐?”

“△△네 엄마가 데려가서 간식 먹이고 있겠지.”

이때만 해도 주민들은 평소처럼 누군가가 A 양을 돌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약 1시간 뒤 다시 카톡 알림이 요란하게 울렸다.


“A 양 찾는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아직 집에 안 들어간 거야?”

“아까 아파트 앞 공원에서 봤는데….”

“아직도 못 찾았다고?”

“단지에 경찰들 쫙 깔렸어.”

엄마들의 카톡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 주민들이 공유한 ‘공포의 6시간’

A 양을 유괴한 김모 양(17·구속 기소)의 집은 A 양이 사는 동에서 걸어서 1분 거리다. 단지에서 가장 큰 아파트다. A 양의 귀가 소식을 기다리던 이웃들은 형사들이 초인종을 누르며 집안을 수색하겠다고 하자 불안감에 휩싸였다. 한 주민은 “경찰이 냉동실이나 신발장 등 사람이 있기 힘든 좁은 곳을 주로 뒤졌다. 순간 ‘설마…’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집에 함께 있던 아이들의 눈과 귀를 막았다”고 말했다.

이날 단지 곳곳을 수색하던 경찰관들이 오후 10시 반쯤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찾았다.” “물탱크에 더 있어!” “범행 도구 나왔어!”

주민들은 베란다 너머에서 들려오는 형사들의 어수선한 외침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아파트 1층 주민들은 창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커튼을 내렸다.

이튿날 주민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A 양의 참담한 죽음을 확인하고 더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김 양이 A 양을 공원에서 유인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폐쇄회로(CC)TV 장면을 본 주민들은 경악했다. 평소 타고 다니던 친숙한 엘리베이터가 CCTV 화면에서 섬뜩한 범죄의 공간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김 양이 안방 욕실에서 끔찍한 방법으로 A 양의 시신을 훼손했다는 내용이 알려진 뒤에는 내부 구조가 같은 집 주민들마저 욕실에 갈 때마다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한 주민은 A 양에 대한 경찰 수색이 시작되기 직전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햇볕에 말린 돼지감자를 거둬들인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가 감자를 널어놨던 곳 바로 옆 물탱크에 A 양의 시신 일부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사건 당일 A 양의 시신 일부가 버려져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이용했던 주민들도 충격을 받았다. 주민 중 일부는 이후 옆 동까지 걸어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김 양과 같은 동에 살았던 한 주민은 “김 양이 고양이를 여러 마리 해부했다고 하는데 예전에 화단에서 심하게 부패해 악취가 나는 동물 사체를 자주 봤다”며 “별것 아니던 기억이 사건 후 악몽으로 바뀌어 되풀이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지인 동원해 ‘범죄 모의실험’

주민들은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김 양과 같은 동에 사는 주부 박모 씨는 수면장애와 불안감 등을 치료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박 씨는 인천지법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서 김 양의 얼굴을 직접 본 뒤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박 씨는 “평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아이가 눈앞의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며 “그 아이가 당시 인사를 안 하고 눈도 맞추지 않아 단순히 낯가림이 심한 학생인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중학생 딸에 대한 걱정이 크다. 박 씨의 아들은 요즘 같은 푹푹 찌는 열대야에도 귀를 덮는 털모자를 뒤집어써야 겨우 잠든다. A 양과 동갑인 아들은 A 양과 같은 학교에 다니며 친구로 지냈다. 박 씨는 “불안해서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줬는데 그걸로 뉴스를 찾아보며 A 양이 어떻게 된 건지 꼬치꼬치 묻는다”며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박 씨는 중학생 딸마저 잠을 자다가 “누군가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긴다”며 울면서 뛰쳐나온 일도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박 씨 가족은 모두 거실에 모여 전등을 켠 채 잠을 청한다.

초등학생 자매를 키우는 이모 씨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 피해망상 수준으로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등하교 때마다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주며 “아이건 여자건 아무도 믿으면 안 된다. 누군가 도와 달라고 부탁하면 무조건 피하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는 “아이들의 자립심과 사회성 발달에 해로울 것 같다”면서도 “자제하려 해도 무의식 중에 아이들 위치추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범죄 타깃이 될까 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에 있던 아이들 사진 등 개인정보를 모두 삭제했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낯선 사람의 유인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인을 동원해 ‘범죄 모의실험’까지 한 주민도 있다.

예쁘장한 얼굴에 몸집이 아담한 A 양은 어디를 가든 눈에 잘 띄는 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웃들이 A 양을 잘 알고 있었다. 주민들은 사건 당일 공원에서 A 양을 보고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주민은 “평소 A 양을 보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곤 했는데 왜 그날만 그냥 지나쳤는지 모르겠다”며 “한편으로 내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지만 A 양과 부모에게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인천=김단비 kubee08@donga.com·차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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