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친구가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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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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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의도용 사례 잇따라

미국 뉴욕 주재원 발령을 받은 부모를 따라 7월 미국에 온 박모 양(15)은 지난달 중순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e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 잠깐 들어온다고 했는데 정확하게 언제냐”는 내용이었다. 친구들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어찌된 사연인지를 물었다. 더 황당해하는 쪽은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카카오톡(카톡·무료 문자메시지 서비스)으로 한 달 가까이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귀신에 홀린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한 달 가까이 누군가 카톡에서 박 양 행세를 해온 것이다.

이처럼 무료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카톡의 명의를 도용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명의를 도용당한 사람은 프라이버시 침해는 물론이고 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다.

박 양처럼 양쪽 중 한 사람만 전화번호를 계속 저장해 놓고 있으면 상대방이 전화를 해지한 뒤에도 자동으로 카톡의 친구로 뜨는 기능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새로 가입한 사람이 그 번호를 물려받으면 카톡에서 직전 사용자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박 양의 명의를 도용한 사람은 “한국에 들어가면 만나자”고 박 양의 친구 여고생들과 약속까지 정해 놓았다. 자칫하면 박 양의 친구가 위험한 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박 양의 부모가 통화를 한 결과 명의 도용자는 성인 남성이었다. 박 양의 부모는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아 경찰에 정식 수사 의뢰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새로 스마트폰에 가입하는 사람 가운데 이전 가입자의 번호를 넘겨받아 사용하는 이용자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SK텔레콤이 6월부터 시작한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 신규 가입자가 연말까지 70만여 명이 될 것에 비춰 보면 적지 않은 수로 추정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새로 스마트폰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서도 주운 전화기를 갖고 마음대로 카톡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분실자가 해지를 했어도 전화기를 주운 사람은 와이파이(WiFi)망이 통하는 곳에서는 그 전화기에 친구 등록된 이용자와 카톡을 계속 할 수 있다.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카톡을 하기 때문에 경찰 수사로도 습득자의 신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분실한 스마트폰을 주운 뒤 등록돼 있는 카톡 친구들에게 돈을 부쳐 달라고 해 수백만 원을 챙긴 사례까지 등장했다.

카톡 측도 이미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수진 카톡 홍보팀장은 “전화번호만 등록돼 있으면 친구로 추천되는 기능 등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우리도 알고 있지만 기본 시스템을 바꿀 계획은 없다”며 “다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보완 대책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카톡 이용자는 지난달 말 3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한국의 스마트폰 이용자 10명 중 9명이 사용하고 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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