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어느 별에게 물어볼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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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지도 얼른 펴 봐. 여기서 좌회전이지?”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조수석에 탄 사람은 참 바빴다. 지도를 보고 운전자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줘야 했다. 순발력이 없으면 차가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였다. 지금은 다 추억이 됐지만….

좁은 땅에서도 이렇게 어려운데 망망대해에서 길 찾기는 얼마나 어려울까. 태양과 달, 혹은 별의 고도를 구하고 ‘올머낵(almanac)’이라는 책을 찾아봐서 현재 위치를 구하는 방법이 있다. 고도를 구함에는 ‘섹스턴트’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올머낵은 선조들이 천체의 시간별 고도를 측정해 만든 책자이다. 그 날짜와 시간에 어떤 별이 어느 고도에 있다면 당신의 현재 위치는 어디라고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이런 항해법을 천문 항해라고 한다. 콜럼버스 ‘선배님’으로부터 수백 년 동안 항해 선배들이 사용해온 지혜다.

이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몰이나 여명 때면 하늘에서 별이 반짝인다. 북반구에는 시리우스, 스피카, 알데바란, 안타레스와 같은 별들이 밝아서 잘 보인다. 1등 항해사는 오전 5시와 오후 7시경 두 차례 섹스턴트를 들고 윙브리지에 나가서 5개의 별을 차례로 고도를 잡아 온다. 그러고는 올머낵을 보고 계산해 10분 내로 5개의 별을 해도에 선으로 집어넣는다. 그러면 선이 한자리에 만나는 점이 바로 현재의 위치이다. 한 점에 별 5개의 선이 모이면 기분이 좋다. 일단 위치를 잘 구한 것이다. 1등 항해사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안개가 끼거나 날씨가 흐리면 무용지물이다. 고도를 구할 대상인 태양이나 별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레이더로 구하는 방법도 있다. 레이더는 전파를 보내 반사파가 돌아와야 하니까, 반사가 가능한 물체가 레이더 주변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육지에 가까운 경우나 앞에 반사체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북태평양에서 안개가 자욱이 낀 상태에서 선박 두 척이 만났다. 선박에 처음 부임한 3등 항해사들은 학교 졸업 뒤 처음 선박 전화로 서로 통화하며 안부를 전했다. 전화 목소리는 더욱 깨끗해지면서 통화하기도 더 쉬워졌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통화를 계속한 결과는 충돌 사고였다. 레이더를 작동시켜서 항상 앞에서 접근하는 선박의 동향을 파악하는 기초를 잊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다.

최근에는 인공위성이 상용화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선박의 위도와 경도를 알아내 선박에 알려준다. 군사적 목적으로 미국 정부가 개발했는데, 점차 민간에도 사용이 허용됐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위치의 오차가 1마일(1.6km) 정도 났지만, 큰 바다에서 이 정도 오차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10여 년 전부터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내비게이션이 상용화됐고, 개량을 거듭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탄생했다.

내비를 포함하는 GPS야말로 바다에서 위치를 구하는 최종 결정판이다. 그래도 가끔은 별을 보며 항해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문명의 이기를 쓰지 않고 자연과 호흡하며 가는 항해가 그립다. 별과 바다와 나, 얼마나 낭만적인가.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올머낵#섹스턴트#천문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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