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도 못푼 과제… 젊은 과학자들 ‘융합연구’로 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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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새 트렌드 ‘융합연구’
항암제 부작용 치료 단초 마련… 자율주행차 ‘미래형 센서’ 개발
분야마다 응용 가능성 무궁무진… 실용화도 빨라 창업에도 적격

융합연구가 과학기술계의 새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 고온에너지연구센터 연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융합연구가 과학기술계의 새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 고온에너지연구센터 연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과학계에서 일가를 이룬 석학급 과학자들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연구 과제를 척척 해결해낸 30대 젊은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경험은 부족하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융합연구’에서 답을 찾은 사례다. 이들은 융합연구를 통해 항암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하고, 고성능 자율주행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미래형 센서 기술을 개발한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결과를 도출하는 융합연구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향후 융합연구 지원방향을 결정할 ‘제3차 융합연구개발 활성화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23일 경기 수원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융합연구로 우수 성과를 올린 청년 과학자들의 발표에 이어,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발표자로 나선 강단비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선임연구원(30)은 항암제 부작용을 해결할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받았다. 항암제 부작용은 6개월이면 사라진다고 돼 있지만 실제 환자들은 수년 이상 고통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강 연구원은 삼성서울병원에서 2012∼2013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 80여 명을 대상으로 항암치료 전과 도중, 종료 후 피부의 유분과 수분, 각질, 주름, 산도, 색상 등을 다각도로 조사했다. 그 결과 환자들의 피부는 1년이 지나도 일반인보다 40%가량 유분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발도 마찬가지였다. 46.5%의 환자는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카락 굵기나 개수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융합연구가 과학기술계의 새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4일 경기
수원시 광교테크노밸리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청년과학기술인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에서 강단비 삼성융합의과학원 선임연구원(오른쪽)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는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왼쪽)과 김기현 포스텍 창의IT융합공학과 교수(가운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융합연구가 과학기술계의 새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4일 경기 수원시 광교테크노밸리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청년과학기술인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에서 강단비 삼성융합의과학원 선임연구원(오른쪽)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는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왼쪽)과 김기현 포스텍 창의IT융합공학과 교수(가운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이 연구는 항암치료로 인한 피부와 모발 변화를 규명한 것으로는 세계 최초여서 학계의 큰 조명을 받았다. 강 연구원은 2013년 제4차 세계 유방암 학술대회에서 우수상을, 피부조사학회에서는 우수 연구 성과자에게 특별히 수여하는 ‘앨버트 클리그먼’상을 받았다.

실용화가 빠른 것도 융합연구의 특징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항암 환자를 위해 유분 함량을 높인 전용 화장품 개발에 착수했다. 스위스 신약 개발사 ‘리젠시 헬스케어’는 ‘우리가 항암환자용 탈모약을 개발해 보겠다’며 국내에 공동연구를 타진해 왔다. 연구진은 현재 항암 치료 후 3년째 탈모를 겪고 있는 환자 35명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두피 보습치료 등으로 큰 탈모 개선 효과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강 연구원은 “암 치료 환자들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새로운 결과를 얻었다”며 “성균관대와 아모레퍼시픽 연구진, 삼성병원 의료진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연구하기 힘들었을 사례”라고 말했다.

융합연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보과학기술 분야에서 특히 빛을 보고 있다. 또 다른 발표자인 김기현 포스텍 창의IT융합공학과 연구교수(34)는 이 분야 차세대 인재로 꼽힌다. 김 교수는 자율주행차 등에 적용할 수 있는 고성능 센서를 융합연구를 통해 개발하고 있다. 그는 반도체 소자 위에 바이오물질을 코팅해 성능을 한층 더 높이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그 돌파구를 연 것이 독일 드렉셀 바이오센터와의 융합연구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진도 이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융합연구에 참여하면서 응용 가능성이 극적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융합연구는 창업을 위한 돌파구로도 불린다. 이상국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박사과정생(37·비닷두 대표)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안경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에 나서고 있다고 발표해 주목받았다.

융합연구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과학 분야 선진국은 예외 없이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국립과학재단(NSF)을 통해 데이터혁명, 차세대 양자혁명 등 과학계 난제 해결을 위한 융합연구 투자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3년간 70억 유로(약 8조8456억 원)를 투자해 저탄소, 기후변화 등의 분야에 대한 융합연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융합연구 강화를 위해 관련 법안 개선을 준비하고 있다. 행사에 참여한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은 “하반기 시행될 새 활성화 계획은 융합연구를 다양한 연구현장에 확산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융합연구#항암제 부작용 치료#자율주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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