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최고야]사람 귀한 줄 아는 회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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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야 소비자경제부 기자
최고야 소비자경제부 기자
“유통기한이 6∼7개월 지난 제품입니다. 복용 여부는 개인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지난달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A업체의 사내 게시판에 황당한 글이 게시됐다. 글을 쓴 주체는 이 회사의 경영지원팀이었다. 요지는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냉장 보관해 온 자사 제품을 직원에게 나눠 줄 테니, 복용 여부는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제품을 받아 든 직원들은 “우리가 쓰레기통이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왜 폐기해야 할 제품을 직원들에게 나눠 주느냐”며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회사가 이런 제품을 직원에게 나눠주기로 결정한 이유가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인지, 처리 비용이 아까워서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제품이 단지 유통할 수 있는 기한만 지났을 뿐 인체에 무해한 상태였더라도 직원 건강을 염려하기보다 재고 처리에만 신경 쓴 회사의 태도에 직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A업체 같은 극단적 사례가 아니어도 사람 귀한 줄 모르는 회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말이나 휴일 근무를 당연히 여기고, 3일 이상 휴가를 못 쓰게 하거나 육아휴직 1년을 다 채워 쉰다고 눈치를 주는 회사가 여전히 적지 않다. 규모가 작은 회사일 경우 사장 한 사람의 불합리하고 독단적인 결정으로 수많은 직원이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입사 후 짧은 시간 내에 그만두는 직원이 수두룩해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많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이런 회사에는 훌륭한 인재가 남아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회사만 생각하면 ‘열폭’하는 직장인들이 느는 추세다. 회사 생각에 심장이 빨리 뛰고,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회사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이 ‘회사 우울증에 시달린다’라고 답했다. 3년 전 똑같은 설문조사에서는 10명 중 7명이 같은 대답을 했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대한 직장인의 실망과 화는 ‘신의 직장’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직원 복지가 좋고 일하기 편한 환경을 가진 회사에 대한 부러움이다.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인 제니퍼소프트는 3년 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와 좋은 근무 환경으로 유명해졌다. 이 회사는 직원에게 연간 개인 취미활동비 300만 원을 지원해주고, 해외여행 취지의 2주 연속 휴가를 준다. 지방에서 온 신입사원에게는 주거비 지원 명목으로 월세 50%를 회사에서 내준다. 여기에 사옥에 딸린 수영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는 문화는 독특하기까지 하다.

이런 회사들이 단순히 직원에게 베푸는 것이 많아서 좋은 직장으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직원을 얼마든지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직원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며, 인격적으로 귀하게 대접하는 조직문화에 직원은 감동한다.

직원 가운데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즐겨 이용하는 마니아가 얼마나 되는지 보면 그 회사가 사람을 중히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사 제품을 아낀다는 건 가장 첫 번째 고객인 직원이 애정을 갖고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잠시 고개를 들어 사무실 주변을 살펴보라. 직원이 우리 회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얼마나 애용하고 있는지. ‘제로’에 가깝다면, 회사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최고야 소비자경제부 기자 best@donga.com
#회사#직원#존중#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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