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완전 자기도취에 빠졌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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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한 식당에서 한국여성이 셀카봉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다. 인터넷 캡처
외국의 한 식당에서 한국여성이 셀카봉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다. 인터넷 캡처
“So narcissi-stick.(완전 자기도취에 빠졌군!)”

얼마 전 미국의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독자라면 저 단어를 다시 한 번 읽었을 것이다. 철자가 틀렸기 때문이다. 원래 ‘자애적인, 자기도취증에 빠진’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narcissistic’이라고 표기해야 옳다. 글쓴이는 단어 뒤에 k를 더 붙였다. 뜬금없이 ‘막대기(stick)’라는 단어가 돼버렸다.

사실 이 글쓴이는 의도적으로 철자표기법을 파괴한 것이다. 이 누리꾼이 댓글을 단 게시물에는 외국의 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막대기를 쭉 뽑아 든 한국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민망할 법도 한데 원더걸스 소희가 ‘텔미’를 부를 때 ‘어머나!’ 하고 지었던 귀여운 표정까지 당당하게 짓고 있다. 댓글을 쓴 사람은 바로 이 ‘막대기(stick)’를 조롱하기 위해 철자표기법을 파괴한 것이다.

이 막대기의 정체는 ‘셀카봉’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셀카봉을 입력하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평소에는 접어서 가방 같은 데 넣고 다니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쫙 펼치면 1m까지 늘어나는 ‘마법’의 도구다. ‘셀카봉 블루투스 일체형’ ‘셀카봉 리모컨’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막대기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셀카봉을 보는 외국인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미국의 한 커뮤니티에 한국인이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올라오자 이들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길거리에서 이거 쓰는 사람 봤는데, 한국에서 정말 많이 쓰는 물건이라고 함.”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안 웃으려고 애쓰는 거 같은데.”

일부 우리나라 누리꾼은 외국인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창피하다”고 말한다. 좋은 음식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 두고 그것을 음미하고 감상하는 행동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단 자신의 얼굴이 나오도록 셀카부터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랑하려고 하는 마음이 셀카봉이라는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의견도 있다. 가방에 고이 접어서 다니다 필요한 순간에만 펼쳐서 사용하는 데다,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비난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2주 전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외모가 비슷한 동양인들이 가득한 관광지에서도 한국인들은 쉽게 구별해 낼 수 있었다. 셀카봉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가까이에 가보면 어김없이 한국말을 쓰고 있었다.

이렇게 셀카봉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가장 만족스러운 컷이 나올 때까지 대여섯 번 같은 사진을 찍었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이것들을 다 담지 못한 아쉬움에 그곳을 떠나기가 쉽지 않은데…. 그들은 사진 몇 장을 찍더니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이내 장소를 옮겼다. 몇백 년의 역사가 깃든 사원 안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연못에 비친 햇빛, 수풀 사이에 숨겨진 작은 조각상들까지 카메라에 잡혔을지 의문이다.

사실 한국인의 셀카봉에 대해 SNS에서 외국인들이 황당해 하는 이유는 여행지에서 순간순간을 만끽할 여유 없이 ‘조금 더 예쁘게 나온 사진 찍기’에 급급한 모습 때문일 것이다. 예쁘게 사진 찍기 위해 도구를 이용하겠다는 발상이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담아야 할 천혜의 관광지에서 투박한 봉을 꺼내 얼굴만 찍어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서두에 소개한 ‘혼자 레스토랑에서 셀카봉으로 사진 찍는 여성’을 본 한 외국인은 이런 씁쓸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워터파크에서 셀카봉을 들고 다니는 여자들을 많이 봤다. (사진 찍는 대신) 그냥 좀 즐기면 안 되는 걸까?”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So narcissi-stick#셀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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