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발사 성공]“외나로도 내려온지 10년… 이제야 발뻗고 잘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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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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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우연의 발사 주역들

우주를 향한 10년간의 노력과 열정이 마침내 값진 결실을 봤다. 온 국민의 박수와 환호 속에 나로호가 하늘로 치솟는 동안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에서 조용히 감격의 눈물을 흘린 이가 적지 않다.

○ 민경주 센터장과 박정주 실장

조광래 나로호발사추진단장과 함께 나로호 성공을 이끈 주역으로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과 박정주 발사체추진기관체계실장을 꼽을 수 있다.

민 센터장은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가 우주센터 용지로 선정된 2000년 12월부터 나로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6년 센터장을 맡아 외나로도를 지켜왔다. 그는 “발사체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 무척 고생했다”며 “나의 작은 기여가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2002년 나로호 개발 사업을 시작할 때 참여해 끝까지 함께한 실무책임자다. 그는 “외부에서는 나로호가 순수한 우리 기술로 만든 발사체가 아니라고 안 좋게 보기도 하지만 발사체 사업은 경험이 필요하다”며 “짧은 시간에 기술적인 경험을 얻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나로우주센터 첫 삽 뜬 김민현 팀장

“나로호와 함께한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아요. ‘우주의 꿈’을 이루는 모든 과정을 차질 없이 해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김 시설운영팀장은 남해의 조용한 섬 외나로도에 처음 왔던 때가 새삼 떠오른다고 했다. 2003년 11월 16일 나로우주센터 건설기술그룹장을 맡은 그는 10명의 직원과 외나로도에 내려와 터를 닦고 가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산을 밀고 길을 내고 발사통제동과 종합조립동을 지었다. 지금의 나로우주센터를 완성한 산증인이다.

“당시 늦둥이 아들의 유치원 재롱잔치가 열렸어요. 못 갔지요. 핀잔도 많이 받았는데…. 그 녀석이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니, 참 세월 많이 흘렀네요.”

예산을 담당한 홍일희 나로호기술경영팀장도 김 팀장과 함께 나로우주센터를 건립한 주역이다. 홍 팀장은 항공우주연구연이 1993년 과학로켓 ‘KSR’ 시리즈를 처음 발사하던 때부터 현장에 함께 있었다.

○ 궤도에 올린 조인현 책임연구원

“성공을 확인한 순간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최근 3년 동안 명절 때도 집에 갈 수 없었거든요.”

조 책임연구원은 나로호 상단부(2단)를 움직이는 추진 로켓 ‘킥모터’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킥모터는 발사 뒤 395초에 점화해 나로과학위성을 목표 궤도에 올려놓는 역할을 했다.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 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킥모터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그는 마치 어린아이 돌보듯 한시도 킥모터 곁을 떠나지 않았다.

“킥모터가 무사히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맥이 풀리며 눈물이 나더군요.” 조 책임연구원은 킥모터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사람으로 설우석 한국형발사체엔진개발실장(전 발사체엔진팀장)을 꼽았다. 설 실장은 러시아에서 들여온 1단 로켓의 구조를 샅샅이 살핀 인물이다.

발사체 연구 분야에선 임석희 발사체추진기관팀 선임연구원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능숙한 러시아어 실력을 갖춰 연구원 내에서 ‘러시아통’으로 불린다.

○ 나로호 궤적 설계한 노웅래 실장

“발사 453초 후 나로호가 우주 저편, 우리가 계획한 그곳에 진입한 것을 확인했을 때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어요.”

노웅래 발사체체계실장은 이번 발사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1990년 초 로켓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궤적을 설계하는 일을 담당했다. 나로호가 지상국과 통신하면서 알려온 궤적을 보면서 비행자세를 제어해 계획대로 날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 열기에서 나로호 지킨 김인선 팀장

“오랜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국민의 관심과 기대에 부응할 수 있어서 이제야 팔다리 쭉 뻗고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인선 발사체열·공력팀장은 냉·온탕을 오간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나로호는 한국형 발사체를 위한 연구개발 과정이었지만 전 국민의 관심에 부담이 컸다는 것이다.

그는 나로호가 어떠한 온도에도 버틸 수 있도록 안정화하는 임무를 맡았다. 발사 직전 나로호에는 영하 183도의 액체산소 수십 t이 들어간다. 발사 순간에는 3000도에 이르는 열기를 아래로 내뿜는다. 엄청난 냉기와 열기에서 나로호의 초정밀 장치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와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대전=전승민·고흥=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 조광래 단장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나로호 발사의 총책임자인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54)은 30일 오후 8시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MDC)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나로호 발사 성공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사과부터 했다.

조 단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실패와 연기를 거듭하면서 힘들었지만 국민들이 계속 관심을 잃지 않고 기회를 다시 줘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극심한 중압감으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10여 년간의 수고와 노력이 값진 결실을 거둔 덕분인지 조 단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나로호 1단을 제작한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에는 로켓 엔진을 개발하는 기술진만 2000명에 이르는데 항우연은 200명이라는 적은 인력으로 이번 성공을 이뤄내 더욱 값지다”고 평가했다.

조 단장은 나로호 발사를 추진하면서 10년 넘게 수천억 원을 들이고도 기술 이전을 못 받았다는 비난을 들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러시아가 기술을 주기로 했다가 나중에 안 주기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애초 계약에 기술 이전 내용 자체가 없었다”고 밝혔다.

조 단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형 발사체 개발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우리의 우수한 인력들이 머리를 맞댄다면 1, 2년 정도는 충분히 앞당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고흥=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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