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손기정 선생의 스포츠 평화 정신, 악화된 한일관계 푸는 데 꼭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손기정 평전’ 출간 日 데라시마 교수
작년 ‘레이더 갈등’ 계기로 집필, 재일교포 모금 등으로 비용 마련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서 일장기 가리려 월계수 바싹 안아”

일본 원로 스포츠 학자인 데라시마 젠이치 메이지대 명예교수가 대학 내 박물관에 전시된 손기정 선생의 올림픽 우승 투구 복제본 앞에서 저서 ‘평전 손기정’을 들고 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일본 원로 스포츠 학자인 데라시마 젠이치 메이지대 명예교수가 대학 내 박물관에 전시된 손기정 선생의 올림픽 우승 투구 복제본 앞에서 저서 ‘평전 손기정’을 들고 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손기정 선생은 한평생 스포츠를 통한 한일 교류를 외쳤습니다.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緖) 선수의 우정을 봤다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지금 악화된 한일 관계를 극복하는 데 스포츠가 하나의 ‘재료’가 될 것 같습니다.”

원로 스포츠학자로 최근 ‘평전 손기정’을 출간한 데라시마 젠이치(寺島善一) 메이지(明治)대 명예교수(73)는 16일 이같이 고(故) 손기정 선생(1912∼2002)을 추모했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 선생을 수십 년간 연구해왔다. 자서전, 사진집을 제외한 손 선생 평전이 나온 것은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처음이다.

데라시마 교수가 펜을 잡은 것은 지난해 12월 말, ‘레이더 갈등’으로 한일 간 공방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는 “아베 신조 정부 핵심 세력들이 한국에 싸움을 거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관계가 악화된 채 내년 2020 도쿄 올림픽을 맞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스포츠 평화 정신으로 한일이 우호를 다져야 한다’는 손 선생의 말이 떠올랐고 곧바로 자료를 모아 원고를 썼다.

데라시마 교수가 손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3년 스포츠 관련 회의에서였다. 한일 간 우호 증진을 외치는 손 선생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그의 업적을 연구했다.

베를린 올림픽 시상식과 관련해 데라시마 교수는 “손 선생께서 ‘한국인이 우승했는데 왜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나오나 하는 부끄러움에 받은 월계수를 가슴에 최대한 끌어당긴 채 일장기를 가렸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데라시마 교수는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언급하며 “손 선수의 가슴에 일장기가 박혀 있는 것을 한국인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기에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손 선생은 한일 간의 우호 관계를 강조했다. 개회식 당시 맨 앞에 서 있던 손 선생에게 한 일본 선수가 “너는 조선인이니까 뒤로 가”라고 하자 당시 육상 선수단 주장인 오시마 겐키치(大島鎌吉) 선수가 “올림픽 중에는 차별하지 말라”며 손 선생을 옹호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이어갔다.

첫 평전에 대해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은 “학술적인 연구가 미비했던 우리나라에 과제를 던졌다”며 “한국 현대사 속 활약상 등 우리만의 시각을 담은 평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전 출간에 들어간 비용 1000만 원은 재일동포, 민단의 모금으로 마련했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외형도 한일 교류를 실천한 셈이다. ‘하늘에 있는 손 선생이 이 평전을 보면 뭐라고 할 것으로 보나’라고 묻자 데라시마 교수는 “경기가 끝나면 유니폼을 주고받으며 모두가 친구가 되는 그런 스포츠정신으로 한일 관계를 해결하라고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책 표지에는 ‘스포츠는 국경을 넘어 마음을 이어준다’라는 글귀가 한글로 적혀 있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손기정#한일 교류#스포츠 교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