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 한 수]〈7〉대나무의 절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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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을 꽉 깨물고 놓아주지 않더라니/알고 보니 그 뿌리가 바위틈에 박혀 있었네./수천만 번 갈고 내리쳐도 여전히 꿋꿋하리니./제아무리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칠지언정. (咬定靑山不放송, 立根原在破巖中. 千磨萬擊還堅勁, 任爾東西南北風.) ―‘죽석(竹石)’(정섭·鄭燮·1693∼1765)
 
시인이 자신의 ‘죽석도’에 쓴 제화시(題畵詩)로 바위틈에 우뚝한 대나무의 고절(孤節·홀로 깨끗하게 지키는 절개)을 묘사했다. 비바람으로부터 시련과 신고(辛苦)를 겪는 것이 어디 대나무뿐이랴. 세상살이 불화와 우격다짐이 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인 것을. 죽석이라는 시제가 아니라면 단순히 대나무와 대자연 간의 치열한 맞섬을 넘어 그것은 비곤(憊困·가쁘고 고단함)한 세월을 살아가는 세상만물 그 어떤 것으로도 다 치환될 수 있다. 대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청산을 꽉 깨물고 놓지 않는다’로 표현한 재기, 2-2-3언으로 가락을 맞추는 7언시의 전통을 거부하고 ‘동서남북’이라고 눙친 소탈함이 이 시의 묘미다.

정섭은 본명보다 판교(板橋)라는 호로 더 잘 알려진 인물. 그는 10여 년 관직생활 동안 ‘관아 숙소에 누워 듣는 대나무 서걱대는 소리, 행여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는 아닌지’라는 시구를 남길 정도로 인정미가 있었고, 가난하고 병든 백성의 구휼 문제로 상관과 자주 마찰을 빚을 만큼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바위틈에 박힌 대나무’의 꿋꿋함이 바로 그의 그런 기개다. 관직을 버린 뒤에는 난, 국화, 송죽 등을 그려 생업을 꾸릴 만큼 솜씨가 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그가 50여 년 집중해온 묵죽(墨竹)이 유명하다. 시서화(詩書畵)에 정통해 세칭 삼절(三絶)로 불렸던 정판교. 그가 남긴 어록 가운데 “어수룩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명언이 있다. 사람이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한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어 어수룩해야 할 때 정작 그렇게 하기가 더 어렵다는 생활철학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대나무#죽석도#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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