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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의 盤세기]충신의 한과 절개를 담은 피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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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의 盤세기]충신의 한과 절개를 담은 피울음

김문성 국악평론가입력 2019-02-08 03:00수정 2019-02-08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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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충정공 기리는 ‘혈죽가’
김옥심 명창(왼쪽 사진)으로부터 ‘혈죽가’를 전수받아 오늘날까지 전한 남혜숙 명창의 ‘잡잡가’ 음반. 김문성 씨 제공

김문성 국악평론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국악계는 독립을 위해 죽음으로 맞섰던 열사를 기린 ‘열사가’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열사가는 광복을 전후로 주로 전문 소리꾼들이 창작해 퍼뜨렸습니다.

판소리 명창 박동실(1897∼1968)은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이준 열사를 주제로 창작 판소리 열사가를 만들어 보급합니다. 광복 직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지만, 박동실이 월북하면서 열사가의 성창(盛唱)도 급락하고 이성근, 정순임 등 제자 몇 명에 의해 겨우 전승됩니다.

평양 출신 서도 소리꾼들 역시 열사가를 보급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서도 소리 연구가 박정홍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가는 한일강제병합 직전에 만들어져 유행했으며, 한동안 잊혀졌다가 광복 후 다시 불린 것이라고 합니다. 명창 김정근, 김경복 등에 의해 전승됐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부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경기 명창들 역시 혈죽가(血竹歌)를 만들어 보급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 열사(1861∼1905)를 기리는 추모곡입니다. 충정공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며 두 차례 상소를 올렸지만 성과가 없자 “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서 진멸하리라”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그런데 1년 뒤 그의 유품이 있던 자리에서 대나무가 뚫고 나왔고, 옷에 묻은 피가 떨어져 대나무가 자라난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혈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국운이 쇠한 곳에 충신이 슬피 울고 열사의 가실 길은 죽음밖에 없단 말가/낙엽도 다 진하고 눈보라 치운 날에 평리원 섬돌 아래 외로이 무릎 꿇고…”

광복 후 충정공의 후손이 노랫말을 지었고, 경기 명창 이창배가 곡을 지었습니다. 이진홍 명창이 부르고 김옥심 명창의 장고로 반주한 릴테이프를 유일하게 제자 남혜숙 명창(78)이 지켜내 오늘날 전해진 노래가 잡잡가 ‘혈죽가’입니다. 이 ‘혈죽가’는 최초의 현대시조 논란이 일었던 1906년 대구여사의 시조 ‘혈죽가’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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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이가 없어 남혜숙 명창 혼자 안고 갈 뻔했으나, 지난해 한 음반사의 도움으로 혈죽가가 오롯이 녹음됐으며, 많은 명창이 이를 배우고 있습니다.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절에는 혈죽가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지길 기대해 봅니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3·1운동 100주년#열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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