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성의 盤세기]1934년 복면가수 ‘미스코리아’ 깜짝 등장… 50년뒤 ‘평양기생 김추월’ 밝혀져 또 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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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최초 ‘얼굴 없는 가수’

1934년 우리나라 최초의 얼굴 없는 가수였던 ‘미스코리아’(왼쪽)의 신문광고 사진과 ‘마의태자’ 음반. 김문성 씨 제공
1934년 우리나라 최초의 얼굴 없는 가수였던 ‘미스코리아’(왼쪽)의 신문광고 사진과 ‘마의태자’ 음반. 김문성 씨 제공

김문성 국악평론가
김문성 국악평론가
가면을 쓰고 무대에서 노래 실력을 뽐내는 한 가요 프로그램이 몇 년째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외모나 배경에 대한 편견을 벗고 목소리만으로 평가하고 싶은 대중 심리를 잘 활용한 프로그램이죠. 대중의 호기심을 단시간에 잡아끄는 티저 효과. 대중문화계에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1931년 7월. 한 장의 음반 광고 때문에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힙니다. ‘금색가면(金色假面)’이라는 여가수가 ‘아리랑’으로 데뷔한다는 일본 빅타 레코드사의 광고였습니다. 광고 속 여성은 쾌걸 조로를 연상시키는 금빛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선인이다’ 혹은 ‘얼굴은 박색인데, 목소리가 뛰어나 마스크를 씌운 거다’라는 등 온갖 소문이 난무합니다. 순식간에 여가수 ‘금색가면’이 일본 대중문화계 실시간 궁금증 1위로 올라서죠.

마스크를 쓴 여성은 22세의 신인가수로, 소문처럼 조선인이 아니었습니다. 박색도 아니었습니다. 출중한 외모에 명문 동양음대를 나온, 신주쿠 물랭루주좌의 명가수 고바야시 지요코(小林千代子)였습니다. 일본 최초 복면가수 고바야시의 성공은 많은 아류를 만들어 내며 일본 대중문화를 이끌어 갑니다. 경쟁사의 탁월한 마케팅에 자존심을 구긴 콜럼비아는 벤치마킹을 시도합니다.

때는 1934년. 각 신문에 실린 콜럼비아의 음반 광고 때문에 온 나라가 술렁입니다. ‘격찬, 환호, 미스코리아’라는 제목을 달고 신곡 ‘마의태자’를 홍보하는 광고 속 여가수의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얼굴 없는 복면 가수는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3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대중 반응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일본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미스코리아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이 흐릅니다. 그런데 1980년 이후 고음반 연구가 본격화되고 유성기 음반과 가사지들을 정리하면서, 또 태평레코드의 신민요 음반 ‘궁초댕기’가 발견되면서 충격적인 사실들이 밝혀집니다.


콜럼비아의 ‘신범벅타령’ 음반 가사지에 ‘김추월(金秋月)’이라는 기생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마의태자’ 광고에 사용된 사진과 동일했습니다. 미스코리아가 평양명기 김추월이었던 거죠.

비슷한 시기 함경도 민요로 알려진 ‘궁초댕기’ 음반이 발견됩니다. 모란봉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가수가 부른 명곡입니다. 그런데 가수 모란봉의 이름 밑에 ‘구명(舊名) 미스코리아’라는 글씨가 씌어 있습니다. 비로소 가수 모란봉의 실체가 확인됩니다. 콜럼비아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미스코리아 ‘김추월’은 ‘모란봉’이라는 새 예명으로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던 겁니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국악평론가 김문성의 ‘반세기(盤世紀)’는 음반 1세기의 줄임말로 음반과 녹음에 참여한 예술인들의 뒷이야기를 통해 시대사를 살펴보는 칼럼입니다.

#김문성#미스코리아#복면가수#평양기생#김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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