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백선희]지식-경험-맛-냄새 어우러진 바다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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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황선도 지음·서해문집 2017년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황선도 지음·서해문집 2017년
백선희 번역가
백선희 번역가
바다쥐, 흑충, 해남자…. 이 괴상한 이름이 모두 해삼을 가리킨다고? 멍게의 배아가 인간의 배아를 닮았다고? 참돔의 콧구멍이 선명하게 두 개로 보이면 자연산, 하나처럼 보이면 양식이라고? 1년생 감성돔은 수컷이고, 2∼3년생은 암수한몸이고, 4∼5년생부터는 암수로 분리돼 대부분 암컷으로 살아간다고? 다랑어가 10여 년을 살면서 평생 1초도 멈추지 않고 순간 최대 시속 160km로 헤엄친다고? 홍합의 수염을 불로 태워 그 재를 바르면 코피가 멈춘다고? 우리가 성게 알로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성게 생식소라고?

경남 남해군 지족해협 죽방렴의 전통적 어업 현장. 백선희 씨 제공
경남 남해군 지족해협 죽방렴의 전통적 어업 현장. 백선희 씨 제공
이 책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그득하다. 해양학과 어류생태학을 전공하고 30여 년 동안 우리 바다를 누비며 바닷물고기를 연구해 온 ‘물고기 박사’ 황선도가 풀어 놓는 이야기보따리. 저자는 바닷속 생물들의 특성과 생태를 학술적으로 설명하고, 옛 문헌들을 인용하며 우리 해산물의 유구한 내력을 알려준다.

그런가 하면 미식가나 음식 평론가처럼, 혹은 낚시꾼처럼 계절별 최고의 횟감을 추천하면서 회 치는 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방어는 눈 주위, 삼치는 ‘배받이살’이 가장 맛있다고 귀띔한다. 또한 각 해산물의 풍부한 영양소도 일러주고 물고기 성질에 따른 색다른 낚시법도 소개한다. 혹은 김홍도 등의 풍속화를 분석하며 그림 속 낚시꾼이 어느 계절 어느 장소에서 무슨 물고기를 잡았으리라 추론도 하고, 개인적 경험담을 토대로 섬 여행의 매력을 설파하기도 한다.

저자가 홍합에 고추장 풀고 풋고추와 감자를 숭숭 썰어 넣어 끓여내는 섭죽 얘기, 연탄불 위에서 타닥타닥 구워지는 삼치 골목 얘기를 풀어놓을 땐 입안 가득 침이 고이면서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든다. 지식과 경험, 학문과 생활, 깊이와 가벼움, 진지함과 유머, 맛과 냄새가 어우러진 이 다채로운 바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진귀한 해산물을 한 상 가득 차려낸 맛깔스러운 성찬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진수성찬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멸종위기종이 늘어가는 해양 현실에 대한 염려도 전한다. 매년 약 2조7000억 마리의 물고기가 바다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어종 고갈과 바다 오염은 흔하게 듣는 뉴스다. 수산물을 그저 우리 밥상을 채우는 반찬쯤으로 여기는 시각을 벗고, 해양이 지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환경 생태계임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도, 해양생물도 각각 자연생태계의 구성원이다. 함께 공존하지 않으면 공멸할 것이다.

남해의 죽방렴, 강화도의 건간망, 제주의 원담. 이 전통적인 ‘슬로피시’들에서 느림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바다 숲을 보호하는 청색혁명을 생각할 때다. 우리 삶의 풍경 깊숙이 밴 소중한 비린내를 잃기 전에. 사라진 물고기들이 돌아올 날을 고대하며 생태계 복원에 힘쓰는 토종 해양생태학자가 외치는 말이다.
 
백선희 번역가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남해 죽방렴#강화도 건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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