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46〉속은 요리로, 겉은 장식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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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수프.
호박 수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이맘때가 되면 알록달록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미국 뉴잉글랜드가 떠오른다. 오래된 가로수 사이로 떨어진 마른 낙엽 위를 지날 때면 들리는 사각거리는 소리. 쌓아둔 호박 더미와 핼러윈을 상징하는 조각한 호박등이 줄지어 늘어져 마을을 지나가는 손님들을 정겹게 맞이한다.

호박의 원산지는 멕시코와 미국 북부이며 과일로 구분되어 박과에 속한다. 동양에서는 호박으로 통칭해 부르지만 크게 주키니, 스쿼시, 펌프킨 등 3종으로 구분되며 미국에서는 껍질 부분이 주황색인 종을 펌프킨이라 부르고 나머지는 모두 스쿼시라 부른다.

아주 작은 장난감 펌프킨은 20g 정도이지만 애틀랜틱 자이언트 종은 300kg에 이르며 왕성하게 잘 자랄 때에는 하루 20kg 정도 성장 속도를 보인다. 수확한 후 가을, 겨울 동안 더 달아진다. 고를 때에는 꼭지 부분이 잘 마르고 좀 움푹한 것, 양쪽이 대칭된 것을 추천한다. 표면이 딱딱한 호박을 자르는 것은 쉽지 않다.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돌린 다음 자르면 훨씬 쉽게 자를 수 있고 조리 시간도 줄이면서 더 단맛을 즐길 수 있다.

‘몰레피피안’이란 요리는 호박과 참깨를 이용한 소스를 고기와 곁들여 만드는 찜 요리로 내가 뉴욕에서 일하던 시절 멕시칸 보조 요리사들이 준비한 직원 식사의 단골메뉴였다. 고소하고 매콤한 소스를 밥과 곁들여 먹으면 그런 맛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묘한 맛에 대한 기억이 황홀함으로 느껴진다.

프랑스인들은 작은 호박을 이용해 그릇을 만들고 호박수프를 담는 것을 즐긴다. 나는 호박떡볶이라는 퓨전 요리를 개발하여 랍스터 소스를 곁들여 내기도 했다. 구워낸 단호박에 찹쌀가루를 섞어 떡 모양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애호박이라 부르는 주키니종은 18세기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다. 내가 일했던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에서는 호박꽃에 리코타 치즈를 채운 다음 튀겨 토마토소스를 곁들이거나 호박꽃과 호박을 잘게 잘라 만든 리소토가 유명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호박파이를 빼놓을 수 없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따고 102명이 버지니아를 향했지만 66일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은 지금의 뉴잉글랜드 지역인 케이프코드다. 농사나 사냥 기술이 전혀 없었던 그들은 첫 겨울을 지내는 동안 50여 명이 사망했다. 다행히 영어가 가능했던 인디언 스콴토의 도움으로 옥수수 경작과 메이플 시럽 채취 방법, 식용 가능 식물 구별법, 사냥과 고기 잡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도움을 준 인디언들을 초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스콴토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11월 중 3일 동안 그들의 근거지였던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서 축제가 매년 진행되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전쟁의 아픔을 감싸고 평화와 공존을 바라며 이날을 추수감사절이라 명하고 국립공휴일로 지정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호박#몰레피피안#호박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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