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실험실]잘 지은 책 제목 하나, 열 마케팅 안 부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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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이름 짓기보다 어려운 책제목 달기의 세계

 “‘완벽하고 싶어서’, ‘우아한 세계’는 책 내용을 알리려면 한참 설명해야 해요. 홍보에 비용이 많이 들어요. 뭘 얘기하는지 대놓고 보여줘야 해요.”

 서울 마포구 사회평론 출판사에서 13일 열린 회의에서 최연순 편집이사가 다음 달 출간할 에세이의 제목 후보를 보며 입을 열었다. ‘Primates of Park Avenue’(파크 애비뉴의 영장류)가 원제인 이 책은 미국 엄마가 뉴욕 맨해튼의 최상류층이 사는 파크 애비뉴로 들어가 독특한 문화를 관찰하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경험을 담았다. ‘판타스틱 맨해튼 백서’, ‘맨해튼 여자 보고서’, ‘맨해튼의 엄마들’도 후보에 올랐다.

○ 손이 절로 가게 해야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아이를 배웅하다 왕따가 된 저자는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구하려 애쓴다. 오순아 교양1팀 편집장은 “20, 30대 여성이 주로 보고 40대로도 확산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독자층을 예상했다. 박보람 교양1팀 대리가 “하이힐, 버킨백이 제목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하자 곧바로 반대 의견이 나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정도로 완성도 높게 짓지 않는 한 하이힐, 버킨백이 들어가면 독자에게 다가가기 어려워요.”(오 편집장)

 “‘칙릿’ 느낌을 주는 에세이는 많이 안 팔려요.”(노희선 편집자)

  ‘영장류’를 넣지 말자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영장류’가 들어가면 서점에서 과학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책의 배경을 나타내는 표현도 찾기 시작했다.

 “센트럴 파크, 파크 애비뉴, 렉싱턴 정도? 참고로 파크 애비뉴의 우편번호는 10021이에요.”(노 편집자)

 기자를 포함해 참석자들은 ‘맨해튼’, ‘상류층’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최 이사는 “‘한국이 싫어서’처럼 제목만 봐도 확 공감이 돼서 바로 집어 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 제목, 판매와 직접 연결

 출판계에서는 내용을 잘 드러내면서 한 번만 들어도 기억돼야 좋은 제목이라고 말한다. 눈에 띄는 제목은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켜 판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본보가 출판계 대표 10명에게 2014년부터 올해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제목이 좋은 책(3권씩)을 조사한 결과 4명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꼽았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대화와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상식을 갈망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도 각각 3명이 추천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남자들은…’은 저자의 메시지는 물론 뉘앙스까지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귀에 한 번에 꽂힌다”고 말했다. ‘시골 빵집…’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과 삶의 진정성을 생각하게 만들고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시를 읽지 않는 독자에게 강렬함을 준다고 분석됐다. 도발적이고 발랄한 제목으로는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가 꼽혔다.

 아쉬운 제목으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풀꽃도 꽃이다’ 등이 나왔다. ‘어떻게…’는 너무 직설적으로 죽음을 표현해 수준 높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나 부모에게 선물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 ‘풀꽃도…’에 대해서는 입시 위주 교육의 병폐를 더 강하게 드러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출판계#책 제목#책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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