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이한일]삽날도 갈아 쓰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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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일
우리 집에서 10여 분 걸으면 펜션과 휴양소 야영장이 있고, 그 중간에 ‘수목원’이 있다. 완만한 경사의 야산 1만2000평에 다양한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선 그곳을 ‘수목원’이라 부르고 있다. 나무를 워낙 좋아하는 분이 30년 전에 임야를 매입하여 가꾼 것이다. 주말마다 내려와 좋은 나무를 심었고 20년 전엔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했단다.

그분은 70세를 훌쩍 넘긴 지금도 늘 수목을 다듬고 정리하고 새로운 묘목을 심는다. 지금은 모두 몇 그루나 되는지 본인도 모를 정도지만 수목원이라고 불릴 만큼 정돈이 잘되어 있다. 판매도 하지만 장삿속으로 하는 것 같지는 않다. 300만 원 이상 호가하는 나무도 이야기하다 뜻이 맞으면 거저 주다시피 넘겨주기도 한다. 2년 전 이 집을 사서 정원을 만들고 있을 때 그분이 우리 집에 몇 번 왔고 그때마다 자기 집에 한번 들르라고 했다. 다양한 수종이 있으니까 가져다 심으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같이 살아갈 이웃인데 돈 관계로 얽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가지는 않았다.

올봄엔 수목원집에 이웃들과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그분이 좋아하는 약주를 사들고 방문하였는데 대뜸 삽을 가로채더니 삽날을 갈아준다. 무딘 삽날로 뿌리를 자르려면 고생한다며…. 그 덕분에 어렵지 않게 화살나무 다섯 그루와 빨간 꽃이 피는 명자나무 한 그루를 30분 만에 캐냈고 아주머니가 직접 담그신 담금주와 음료수를 마시는 내내 그분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고 자기 일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는 워낙 기계치라 예초기의 단순한 고장에도 손댈 엄두를 못 낸다. 수리센터를 찾거나 누군가를 불러서 고치곤 한다. 귀촌 후 가장 아쉬운 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낫을 갈아 본 적도 없고, 둔해진 전동 톱날은 새것으로 교체해서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삽을 갈아 쓰다니! 다시 생각해 보고 배워야겠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어느 집 창고에 가지런히 가득 쌓아 놓은 장작과 농기구를 보며 감탄했는데 우리도 그렇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8월인데도 아침저녁으로는 벌써 쌀쌀하다. 새벽엔 13도까지 떨어진다. 해가 조금씩 빨리 지면서 그만큼 일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지난주에 배추 모종을 심고 김장 무와 동치미 무 씨앗도 뿌렸다. 대부분 8월 중순에 배추를 심는데 나는 늦게 심는 편이다. 김장을 늦게 하는 것이 좋고, 그래서 조금 덜 자라도 그 때에 맞추어 배추를 뽑고 싶어서다. 속이 노랗게 꽉 찬 것보다는 속이 덜 찼지만 잎이 퍼런 것이 김장을 담갔을 때 씹는 맛도 있고 깊은 맛이 나는 것 같다. 그래도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날이 너무 일찍 추워지면 어쩌나, 서리가 일찍 내리면 어쩌나 마음이 쓰인다. 이번 주말에는 쪽파와 갓을 심어야겠다.
 
이한일
 
※ 필자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목원#명자 나무#배추 모종 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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