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盆地가 주는 선물… 급류, 온천, 그리고 名酒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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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지역의 山中도시, 히토요시

핫피(하얀 겉옷)를 걸친 두 사공이 앞뒤에서 노로 균형을 잡으며 급류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구마카와는 일본 3대 급류타기 강 중 하나다. 히토요시(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summer@donga.com
핫피(하얀 겉옷)를 걸친 두 사공이 앞뒤에서 노로 균형을 잡으며 급류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구마카와는 일본 3대 급류타기 강 중 하나다. 히토요시(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summer@donga.com
항공권 가격은 시즌별로 편차가 크다. 가장 높은 순으로 나열하면 최성수기 성수기 비수기다. 그런데 성수기와 비수기 사이엔 잠시 별도 시즌이 있다. ‘숄더(Shoulder)’라는 ‘어깨걸이’다. 9월이 그렇다. 8월 휴가철과 10월 한국연휴사이 잠깐의 소강국면이 그것이다. 물론 늦장 휴가객 같은 돌발변수도 예상되지만 10월 연휴에 수요가 몰린 만큼 일시적 가격 인하를 기대해 볼 만하다. 숙박료도 항공료 추이를 따르니 전체 여행비용은 낮아진다. 규슈여행 시 저렴하고 효과적인 교통카드 ‘산큐패스(SunQ Pass)’로 온천욕과 풍치를 두루 즐길 만한 산중도시 히토요시(人吉·구마모토 현)로 안내한다.

산에서 샘솟는 물이 큰 강 이뤄 도시로

히토요시를 처음 찾은 건 6년 전. 당시는 철도로 구마모토에서 가고시마로 가며 취재할 때였다. 그때 우연찮게 히토요시를 지났는데 야쓰시로 역에서 탄 히사쓰센 철도의 종착역이 히토요시다. 내가 여길 기억하는 건 히사쓰센 철도에선 차창 밖으로는 계곡의 강물이 떠나지 않아서다. 그때 이게 ‘일본 3대 급류’ 중 하나인 구마가와(球磨川)이고 한여름이면 목선과 고무보트로 급류타기를 즐기는 곳이란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다시 찾으리라 다짐했는데 그게 올 여름에야 현실이 됐다. 그런데 이번 여행길은 달랐다. 기차 대신 버스를 이용했다. 산큐패스(전 규슈)로 후쿠오카에서 탄 미야자키행 고속버스였다.

히토요시 톨게이트. 그런데 고속버스는 시내로 들어서지 않는다. 톨게이트 앞 버스정류장에정차한 뒤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거기서 시내진입은 귀엽게 생긴 ‘주구리토(じゆぐりと)’버스를 이용한다. 히토요시의 주요 관광지를 주유하는 시티투어버스다. 주민 3만3000여 명의 작은 도시 히토요시.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그렇다보니 산에서 샘솟은 물로 이뤄진 내는 모두 도시로 향해 큰 강을 이룬다. 그게 도심의 구마가와다.

옛날엔 급류로 나무 운반… 지금은 레저 천국

이런 산중에 이런 도시가 들어섰다면 뭔가 있었을 터. 근대화이전 목재집하장이었다. 배경은 이 급류. 벌채한 나무는 경사를 이용해 히토요시로 보내졌고 목재는 이 급류에 띄워 하류로 이송했다. 그걸 건져 유통시킨 곳이 야쓰시로(八代)다. 가고시마 철도노선이 야쓰시로∼히토요시(히사쓰센·1908년 개통)의 산중 루트로 정해진 건 그 덕분. 물론 규슈서쪽 동중국해변 노선이 외국의 침공에 무방비로 당할 수 있어 제외된 것도 이유다. 어쨌든 도로도 철도처럼 강을 따르니 렌터카 여행자라면 히토요시에서 야쓰시로로 가는 길에 이 길을 따르면 내내 강을 보며 멋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히토요시는 에도시대(1603∼1868·265년간)를 포함해 메이지유신으로 봉건제도가 사라질 때까지 사가라(相民) 가문이 지배했던 곳. 그래서 성도 축조됐지만 현재는 터만 남은 상태. 1871년 폐번치현(廢藩置縣·봉건영지인 번을 없애고 지방행정조직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와 현으로 일원화한 행정개혁)때 메이지정부가 국유화한 뒤 부수고 매각한 탓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오랜 히토요시의 유산은 지금도 여전하다. 온천이다. 히토요시는 일본에서 온천도시로 이름난 곳이다. 한적한 산중의 온천에서 휴식하며 구마가와 강에선 급류타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놓고 히토요시의 자랑거리인 ‘구마쇼추(球磨燒酒·소주)’를 홀짝이는 것이다.

히토요시 성터는 강변에 있다. 구마가와 무네가와 두 강을 자연 해자(垓字)로 삼은 것인데 규모(둘레 2.2km)가 의외로 컸다. 한적한 성터는 나무가 우거진 공원모습이라 산책하기 좋다. 거기서 시내로 들어서는 데 낡은 목욕탕이 보인다. 시내엔 이런 고풍스러운 공동온천욕장이 곳곳에 있었다. 일본인여행자가 히토요시에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있다. 1200년 역사의 국보 아오이아소(靑井阿蘇) 신사다. 시내에 한적한 연지(蓮池)를 거느린 신사는 고풍과 품격이 돋보이는 문화재다. 일반 신사와 달리 불교사찰의 분위기가 짙은 건 806년에 창건된 오랜 역사 덕분. 시외곽엔 에이고쿠지란 불교사찰도 있는데 600년 전 짓테이란 주지스님이 직접 보고 그렸다는 ‘귀신그림’이 있다.

쌀로만 빚는 500년 역사의 ‘구마쇼추’

센게쓰슈조의 무료시음장. summer@donga.com
센게쓰슈조의 무료시음장. summer@donga.com
다음 날 아침. 나는 시내강변에서 급류타기 장면을 목격했다. 열두 명을 태운 작은 목선을 앞 뒤에서 사공이 노로 균형을 유지하며 빠른 물살의 강을 타고 하류로 질주했다. 강물은 수량변화가 적은 편이라 연중 배를 띄우는 데 급류타기만큼은 시즌이 종료되는 10월까지 대체로 이 속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강엔 뱃놀이만 있는 게 아니다. ‘쇼추(燒酒)’도 있다. 그걸 여기선 ‘쇼추계곡’이라 부른다. 28개 양조장이 상류부터 히토요시까지 강변에 몰려서다. 그게 ‘구마쇼추’인데 코냑 샴페인 스카치처럼 세계무역기구(WTO)의 ‘지리적 표시 보호제도(TRIPS)’에 등록된 고유브랜드다.

구마쇼추는 쌀과 물, 효모 외엔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고 빚는다. 그리고 모두가 밑술을 만든 뒤 그걸 증류시켜 내리는 혼카쿠(本格)쇼추다. 알코올을 물에 탄 희석소주에 맛들인 한국인은 일본소주의 맛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시게 되면 결국엔 끌리게 된다. 혼카쿠쇼추의 깊고 그윽한 맛과 향에 매료돼서다. 그것도 나무통숙성(위스키 방식), 상압증류(통상적 방식), 감압증류(낮은 온도로 천천히 증류시켜 풍성한 향이 배인 소주) 등 세 방식으로 양조해 선택의 폭이 넓다.

시내엔 오직 쌀로만 빚는 구마쇼추를 음미할 곳이 있다. 센게쓰(纖月)슈조(1903년 개업)의 시음장이다. 10분간 주조장 견학 후 15분간 무료시음을 제공한다. 이곳은 시설도 훌륭하고 규모도 커 술맛을 본 뒤 구매하기도 좋다. 주조장의 핵심은 술 빚는 장인 ‘토지(杜氏)’의 실력과 명성. 센게쓰의 토지는 6대째 가업을 잇는 바바(馬場)집안이 맡고 있다.

이런 구마쇼추 역사는 500년을 헤아린다. 배경은 역시 지형. 분지는 일교차가 커 쌀 맛도 일품인데 술의 몸이라 할 물도 풍성한 청정지하수로 조달하니 맛이 좋을 수밖에. 게다가 구마카와의 급류가 생산된 쇼추 운반의 고속도로 역할을 맡았으니 쇼추가 발달하게 된 건 당연한 일. 규슈에선 고구마로 빚는 가고시마의 혼카쿠쇼추가 유명하지만 그 200년 역사도 히토요시의 구마쇼추 앞에선 족탈불급이다.

히토요시를 떠나기에 앞서 철도역을 찾았다. 1908년 개통 당시 나무로 지은 고풍스러운 역사 자체가 볼거리여서다. 플랫폼의 나무 벤치, 구식 대합실 등 모든 게 당시 그대로다. 역 앞엔 명물도 있다. 매시 정각 민요와 인형 춤으로 시간을 알리는 ‘가리쿠리 시계’다. 이 덴슈가쿠(天守閣·일본의 성에서 가장 높은 첨탑 형태의 관측소)모형의 시계에선 민요와 더불어 사방창문에서 가라쿠리(인형)가 나온다. 히토요시 관광안내소는 역사 안에 있다.

 

▼곳곳에 료칸… 대자연 속 온천욕에 피로 싹▼

다카라유의 고풍스러운 온천욕장. summer@donga.com
다카라유의 고풍스러운 온천욕장. summer@donga.com
히토요시는 원천공이 50개를 넘을 만큼 온천수가 풍부하다. 분지의 이곳으로 온 산의 물이 몰려서다. 분지 자체가 지형변화로 고갈된 호수란 점도 한몫했다. 산중이긴 해도 목재산업의 중심이라 에도시대에 이곳은 흥청댔다. 둘레 2.2km의 히토요시 성이 그 증거. 삶도 풍족해 ‘규슈의 교토’라 불렸다. 그게 료칸 28개 모두 고급스럽고 품격을 갖춘 배경이다.

내가 찾은 곳은 두 곳. 다카라유는 정원을 갖춘 주택스타일, 아유노사토는 강변에 9층 규모 호텔스타일이다. 다카라유의 특징은 오카미(女將·여성총지배인)의 심미안과 성격, 관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고급가구(모두 이탈리아산)와 석재실내장식, 이탈리안 푸드스타일의 가이세키요리다. 전통과 현대, 일본과 서구의 만남을 통해 구현한 독특한 분위기로 최고의 휴식과 힐링을 이끈다.

반면 아유노사토는 대규모 실내외 욕장을 3층과 5층에 두어 바로 옆 구마가와를 배경으로 히토요시의 자연과 더불어 휴식하도록 돕는다. 도자기욕조가 갖춰진 전망좋은 테라스객실도 이곳의 자랑거리. 테라스 로텐부로에 몸을 담근 채 자연을 호흡하는 지극한 호사도 누린다. 두 곳 모두 가이세키와 조식 수준은 일본 최고.

현지 전화 ◇다카라유(たから湯): 0966-28-3080 ◇아유노사토(あゆの里): www.ayunosato.jp(한글) 0966-22-2171

 

▼규슈지역 버스승차권 ‘산큐패스’로 온천여행▼
산큐패스(사진)는 사흘(북부규슈·규슈전역)이나 나흘(규슈전역)간 시모노세키(야마구치 현)까지 규슈의 거의 모든 노선버스를 이용하는 승차권. 배(세 항로)와 철도(일부)도 가능하다.

북부규슈(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등 5개 현)3일권은 6000엔, 규슈전역은 1만 엔(3일) 1만4000엔(4일). 규슈투어(www.kyushutour.co.kr) 티몬 등지에서 할인가에 살 수도 있다.

◇이용방법: ‘SunQ Pass’스티커 부착 버스면 OK. 뒷문으로 승차, 앞문으로 하차. 탈 때는 뽑은 정리권을 내릴 때 함에 넣고 패스를 운전기사에게 보여준다. 고속버스(일부 노선)는 전화로 좌석예약을 한다. 필요시 3자통역서비스(무료)요청. △규슈타비(http://kyushutabi.net): 산큐패스를 이용한 규슈여행요령 등 상세정보가 담긴 블로그. 모든 궁금증을 풀어준다.

히토요시(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버스노선:
‘후쿠오카(텐진 혹은 하카다버스센터 3층에서 탑승)∼미야자키’ 고속버스 탑승. 2시간 30분 소요. 하루 28회 왕복. 산큐패스 이용 시 예약(오전 8시∼오후 7시)필수, 현지예약센터(산코버스) 096-325-0100 ◇주의: 히토요시 시내에선 산큐패스 북규슈권이 통용되지만 미야자키행 고속버스엔 전규슈권이 필요하다. 상세한 안내는 산큐패스 공식사이트인 ‘규슈타비’(www.kyushutabi.net)로.

홈페이지: △히토요시(일본어): www.hitoyoshi-city.com △히토요시 온천관광협회(한글): http://hitoyoshionsen.net △센게쓰슈조(일본어): www.sengetsu.co.jp △히사쓰센 철도(일본어 영어): www.hisatsusen.com ◇급류타기(구마가와구마리): 연중 가능, 중학생 이상. ▽코스 △연중: 25분(2700엔) 50분 탑승 △4∼10월: 급류코스(45분) www.kumagawa.co.jp
#히토요시#구마쇼추#다카라유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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