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꽃향기에 취한 걸까… 사케향에 취한 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간사이 지방 술도가를 따라서

《그건 우연이었다. 간사이 지방 술도가(都家)를 찾아 떠난 길이 1400여 년 전 고구려 고승과 일본국 태자의 여행길과 일치한 건. 그들은 우리도 잘 아는 혜자(惠慈)와 쇼토쿠(聖德·574∼622) 태자. 태자는 선왕의 대를 이었지만 나이가 어려 고모 스이코 여왕이 섭정했다. 33대 스이코는 일본 최초의 여왕. 조카 쇼토쿠를 태자로 책봉한 뒤엔 혜자에게 교육을 맡겼다. 혜자가 일본에 온 건 여왕의 재위 3년차(595년). 백제 고승 혜총도 당시 함께 있었는데 두 고승은 나라(奈良)에 아스카사를 짓고 운영했다. 혜자가 태자의 스승으로 임명된 건 그 이듬해. 그는 자립심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택한 게 여행. 이카루가(나라)를 떠나 우지(교토·京都)를 경유해 시가라키(시가 현)를 지나 비와 호수 동편에서 북행해 남서쪽의 나라로 되돌아오는 긴 여로였다. 비와 호 동편 ‘백제사(햐쿠사이지)’는 이 여행길에서 조성됐다. 그 산에 서린 상서로운 기운을 보고 발원해 지었는데 지금도 건재하다.》
 
나의 술도가 여행길도 노정은 비슷했다. 나라에서 ‘도지(杜氏·사케 양조장인)의 신’을 모신 오미와 신사와 백제인이 전한 누룩으로 술을 빚고 그 술지게미로 담근 장아찌 ‘나라즈케’를 지금도 술과 함께 만드는 이나타슈조에 들른 뒤 우지를 경유해 교토로 갔다. 거기선 380년 역사의 도가 겟케이칸(月桂冠)을 찾았고 이후엔 비와 호를 끼고 북행해 간사이 사케의 주역 ‘단바(丹波)토지’의 고향 사사야마(효고 현)까지 갔다(4월 1일자 1편 기사).

오늘은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 호를 품은 시가 현의 술도가와 유적을 찾는다. 그런 뒤엔 교토의 후시미와 더불어 간사이 사케의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고베의 나다(灘·효고 현)를 찾는다. 그리고 매실주의 고장 와카야마 현에서 여행을 마친다.

비와 호반의 국보 성 히코네

교토는 메이지 유신(원년 1869년)으로 왕실이 에도(江戶·도쿄)로 이전하기 전까지의 수도. 그런데 그런 교토가 일본엔 두 개―교토와 동교토―다. 동교토(東京都)란 ‘동쪽의 교토’. 현 수도 ‘도쿄(東京)’는 여기서 도(都)자만 뺀 것. 그런데 그 도는 서울의 ‘특별시’와 같은 도쿄의 행정단위. 따라서 공식 명칭은 도쿄도(東京都). 그게 ‘동교토’로 표기된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 비와 호 여행길에 빼놓을 수 없는 히코네 성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성 중 국보로 지명된 건 다섯 개뿐으로 히코네도 그중 하나다. 보존 상태가 완벽해서다. 그런데 내겐 그보다 이 성에서 조망되는 한 장소가 더 눈에 들어왔다. 3월 하순에도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설산 아래 세키가하라(기후 현)다.

거긴 265년이나 지속된 에도 막부 봉건시대(1603∼1868년)를 연 역사적인 장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이합집산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인데 결국은 전국의 봉건영주가 동서 두 패로 갈려 1600년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됐다. 거기가 이 세키가하라. 승부는 의외로 싱겁게 갈렸다. 서군의 적전분열과 배반으로 동군이 손쉽게 승리를 쟁취했다. 당시 동군의 수장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렇게 해서 세상은 훗날 동교토로 표기된 에도에서 문을 연 도쿠가와 막부 아래 놓이게 됐다.

올해는 그 히코네 성이 완공된 지 410년 되는 해. 그런데 410년 전 이곳엔 나처럼 한국인이 찾아왔다. 조선통신사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임진왜란 이후 양국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고 시모노세키로 상륙해 육로로 에도까지 이동했던 통신사 일행은 비와 호반을 지나며 이 성 아래 마을에서 유숙했다. 시가 현은 교토와 에도, 두 수도를 잇는 길이 지나는 길목. 혜자와 쇼토쿠 태자의 여로였던 ‘태자의 길’ 역시 여길 지난다.

그런 만큼 시가의 술도가 역사도 깊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오카무라 혼케(岡村本家). ‘긴카메(金龜)’와 ‘오보시(大星)’란 술을 내는 163년 역사의 양조장인데 창업 당시 건물에서 술을 빚고 있다. 그래서 곳곳에 옛 양조시설과 도구가 그대로 놓여 양조 역사를 더욱 실감나게 느꼈다. 이곳 주인의 고집은 대단했다. 빚은 술 전량을 기푸네후쿠로시보리(木조袋搾り)로 내서다. 사케는 찐쌀에 물을 넣고 누룩과 효모를 첨가해 당화와 발효 두 과정을 동시에 진행시켜 얻는다. 그런 뒤 고운 천에 담아 짜내는데 요즘은 압착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옛날엔 커다란 나무통에 쌓은 뒤 무거운 돌로 눌러 짜냈다. 그 차이는 술지게미 양과 맛에서 드러난다. 나무통에서 짜면 술지게미가 30%나 남지만 술맛이 우아하다. 반면 압착기에선 1%밖에 남지 않고 짜낸 술의 양도 많지만 맛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기푸네’란 배처럼 보이는 나무통. ‘시보리’는 조인다는 뜻이다.

후시미와 쌍벽을 이루는 나다의 양조산업

사케 양조에 관한 한 효고 현은 독보적이다. 최고의 양조미 야마다니시키를 개발한 데다 전국에서 러브콜을 받는 ‘난바토지’(난바 지역 양조장인)까지 보유해서다. 그런 효고에서도 사케가 산업으로 발전한 곳은 개항장 고베의 나다 지역. 거기엔 ‘고고(五鄕)’라고 불리는 다섯 마을이 12km가량 늘어섰는데 유명 양조장의 집합소다. 나다는 겟케이칸이란 술로 대표되는 후시미(교토)와 쌍벽을 이루는 간사이 사케의 명소. 양조는 17세기 중반 이타미(효고 현) 출신의 자코야 분자에몬이란 도지로부터 비롯됐다.

나다의 양조용 물 미야미즈는 후시미의 물과 다르다.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경수다. 그래서 술맛이 강하다. 그걸 나다는 극복했다. 쌀의 발아는 가볍게 하고 알코올 발효 역시 짧고 격렬하게 유도해 드라이하면서 거칠고 강하며 단단한 남성다운 맛을 찾아냈다. 그러면서 양조 메카로 발돋움했는데 항구라는 지형도 한몫했다. 당시 모든 사케는 오사카로 운반됐다. 최대 소비처 에도로 보내자면 오사카에서 배로 실어 날라야 해서다. 그러자면 내륙에선 마차로 실어오느라 시간이 걸렸다. 반면 나다는 생산 즉시 선적을 하니 상대적으로 신선한 사케를 공급할 수 있었다.

노벨상 축배주와 일본 최대 양조장

하쿠쓰루 주조기념관의 기념촬영장. 핫피(겉옷)를 입고 두건을 두른 채 타루(술통)를 들고 촬영한다. 고베(효고 현)에서 summer@donga.com
하쿠쓰루 주조기념관의 기념촬영장. 핫피(겉옷)를 입고 두건을 두른 채 타루(술통)를 들고 촬영한다. 고베(효고 현)에서 summer@donga.com
나다에서 찾은 양조장은 두 곳. 1751년 창업한 고베 슈신칸(酒心館)은 노벨상 수상자 만찬 테이블에 오른 명주 ‘후쿠주(福壽)’의 양조장, 그보다 8년 앞서 창업한 하쿠쓰루(白鶴)는 일본 전국 1300개 양조장 중 출하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두 곳 모두 양조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중 슈신칸은 유럽의 와이너리처럼 양조시설을 복도에서 유리창 너머로 관람하는 현대식 시설을 갖췄다. 반면 하쿠쓰루는 제1호 본점의 옛 양조장 건물에 양조 과정을 전시한 전시관 겸 판매점을 운영한다.

슈신칸의 사케가 노벨상 만찬석상의 축배주로 쓰일 만큼 명성을 얻은 배경. 미나모토모 마사카즈 지배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흰 술맛이 누룩에 좌우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배양해 씁니다.” 대다수 양조장은 누룩균 생산 공장(전국 9곳)에서 구입해 쓴다. 이 양조장은 사장이 다케노스케(武之助)란 이름으로 줄곧 대물림 중인데 현재는 그 13대. 이런 일관성이 생산량도 늘리지 않고 술맛에도 변화를 주지 않는 후쿠주의 배경이다. 널찍한 양조장엔 가이세키 요리를 내는 고풍스러운 식당(사카바야시)이 시음과 구매를 할 수 있는 매장과 함께 있다.

하쿠쓰루는 출하량 최대 양조장답게 거대한 공장에서 술을 만든다. 그래서 방문객은 그 옆 자료관을 찾는데 그 전시 시설 역시 규모가 크고 훌륭하다. 마네킹을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양조하는 과정(10가지)을 실제 현장처럼 재현해 두었다. 전시관엔 그 전 과정 설명서도 있는데 한국어판까지 있다. 매장에선 이 회사의 술 외에도 사케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식혜 등도 판매한다. 하쿠쓰루는 2007년 도쿄의 중심 긴자의 가부키 초에 ‘하쿠쓰루 긴자 스타일’이란 사케 테마 빌딩을 짓고 그 옥상에서 자체 개발한 주조용 쌀을 재배해 술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거기선 지금도 1박 2일 일정의 사케 강좌가 진행 중이다.

매실 본고장의 와카야마 매실주

간사이 지방 사케 취재의 마지막 행선지는 와카야마 현의 가이난(海南) 시. 와카야마는 일본을 상징하는 과일인 매실의 본고장으로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그래서 찾은 곳도 사케와 우메슈(梅酒·매실주)를 두루 양조하는 나카노(中野)BC. BC는 ‘생화학 창안품(Biochemical Creation)’의 약자로 매실을 활용한 건강식품(매실 진액)도 개발 생산한다.

1932년 창업 당시엔 간장만 양조했다. 그러다 우메슈와 사케에 건강식품까지 생산 품목을 확대한 것. 여기서 양조하는 우메슈는 30종도 넘는다. 모두 와카야마에서도 최고로 치는 ‘난코바이’(매실 종류)만 쓴다. 여기서 내는 사케 브랜드는 ‘기노쿠니야 분자에몬’으로 양조장 투어 중에 유료(400엔)로 맛본다.

간사이 지방(일본)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시가 현:
△양조장: 후쿠이야헤이(福井彌平)상점(1748년 창업·www.haginotsuyu.co.jp), 기타(喜多)주조(1820년 창업·www.kirakucho.jp), 히라이(平井)상점(1658년 창업) 등 29곳 ▽시가·비와 호 관광 △홈페이지: kr.biwako-visitors.jp/(한국어) △무료 와이파이: 시가 현 전역에서 제공. 스마트폰에서 ‘Biwako_Free_Wi-fi’ 선택 △관광안내소: 오쓰 역(한국어 대응)과 히코네(JR히코네역에서 도보 1분)에 있음 △유잔소(雄山莊): 오쓰(현청 소재지) 시내에서 비와 호수가 조망되는 언덕 위 전통료칸. 오미(시가의 옛 지명) 지역 최고요리장 수상의 요리사가 음식을 낸다. www.yuzanso.co.jp

효고 현: ▽고베 △고베 슈신칸: 대표 술 후쿠주는 세 종류(골드 블루 그린레이블)가 있는데 파란색 병(블루레이블)이 노벨상 만찬주다. www.enjoyfukuju.com(한국어) △하쿠쓰루 주조: 자료관은 1969년까지 본점 1호 주조장으로 사용했던 옛 건물. 입장 무료. www.hakutsuru.co.jp/shiryo(한국어) △인간과 방재미래센터: 1995년 1월 17일 오전 규모 7.3의 강진으로 몇 분 만에 6400명의 인명을 앗아간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참상을 보여주며 그에 대비한 일본의 노력을 전시하는 곳. 입장료 600엔. www.dri.ne.jp(한국어)

구로시오 시장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참치 해체 쇼. 와카야마 시(와카야마 현)에서 summer@donga.com
구로시오 시장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참치 해체 쇼. 와카야마 시(와카야마 현)에서 summer@donga.com
와카야마 현: △나카노BC: 가이난 시 소재. 양조장 안에 아름다운 일본 정원까지 있어 연간 방문객이 3만 명을 헤아린다. 견학은 무료지만 사전에 전화로 예약은 필수. www.nakano-group.co.jp(한국어) △와카야마 마리나 시티: 나카노BC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의 와카야마 시내 바닷가에 조성된 관광 시설. 구로시오(黑潮) 수산물시장이 놀이공원 ‘포르토 유로파(Porto Europa·입장 무료)’와 함께 있다. 구로시오 시장에선 신선한 해산물과 건어물을 파는데 볼거리라면 하루 세 번(오전 11시, 낮 12시 반, 오후 3시) 진행하는 참치 해체 쇼. 참치 한 마리를 15분 만에 부위별로 자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www.marinacity.com(한국어)
#간사이 여행#사케여행#일본 여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