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피아노의 귀신’ 리스트가 묘사한 눈 치우는 모습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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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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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북미와 유럽에서 폭설 소식이 유독 많은 듯합니다. 서울에서도 다른 해에 비해 잦은 눈발을 봅니다. 어릴 때는 눈이 오면 무조건 즐거웠지만, 어른이 되니 눈발을 보면서 출퇴근 걱정도 하고 눈을 치우는 사람들의 노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피아노 소리의 명징함이 찬 느낌하고도 통하기 때문일까요. 겨울을 묘사한 음악 중에는 피아노곡이 많은 편입니다. 겨울과 관련된 피아노 연습곡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음악도 있습니다. 쇼팽의 연습곡 작품 25 중 열한 번째 곡인 이른바 ‘겨울바람’입니다. 음울하고 느릿한 시작 부분에 이어, 느닷없이 높은 음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듯한 빠른 선율이 그야말로 매서운 겨울바람을 연상하게 합니다.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린 쇼팽에게 ‘겨울바람’이 있다면, 같은 시대 ‘피아노의 귀신’으로 불린 리스트에게는 ‘눈 치우기’가 있습니다. 그의 ‘초절기교 연습곡’ 열두 곡 중 마지막 곡인 ‘눈 치우기(Chasse-neige)’입니다.

‘눈 치우기’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어린 시절, 눈이 약간 잦았을 때 삽이나 넉가래로 눈을 밀어내시던 아버지가 떠오르시나요? 또는 플라스틱 빗자루를 쓸며 아파트 출입구로 길을 내는 경비 아저씨들이 떠오르시나요? 그런데 리스트가 묘사한 ‘눈 치우기’는 ‘폭설에 대항하기’에 가깝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왔던 황제가 듣는다면 분명 ‘음표가 너무 많아’라고 얘기했을 겁니다. 손을 털어내듯이 여러 음을 번갈아 짚는 트레몰로 주법은 하늘에서 걷잡을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눈 폭탄을 연상하게 합니다. 남자들이라면 군대 시절 경험한 눈 치우기의 고난이 떠오를 법도 합니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군요. 남은 겨울에도 눈이 인간에게 주는 ‘고난’은 가급적 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눈이 주는 따뜻한 느낌만 남기는 겨울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28일 열리는 피아니스트 왕혜인의 ‘피아노 인 컬러스 3, 화이트 온 화이트’에서 첫 곡으로 리스트의 ‘눈 치우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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