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푸치니 ‘투란도트’와 그의 하녀 ‘도리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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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위 사진)와 그의 하녀였던 도리아 만프레디.
푸치니(위 사진)와 그의 하녀였던 도리아 만프레디.
푸치니의 유작 오페라인 ‘투란도트’에는 타이틀 롤인 투란도트 공주 외에 두 번째 히로인이 등장합니다. 망명해 떠도는 칼라프 왕자의 시녀 ‘류’입니다. 류는 ‘왕자의 이름을 대라’는 투란도트 공주의 강요를 거부하다 자기 가슴을 찔러 죽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에 흔한, 비련의 히로인이죠.

푸치니가 죽고 2년 뒤인 1926년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가엾은 류의 모습에서 실제 인물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푸치니의 하녀였던 도리아 만프레디였습니다.

1908년 말, 푸치니의 부인인 엘비라는 하녀 도리아가 남편과 관계했다며 마을 사람들 앞에서 심한 모욕을 주었습니다. 도리아는 새해가 밝은 며칠 뒤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가족들의 요구로 부검이 실시되었습니다. 의사는 도리아가 처녀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로 전 유럽이 떠들썩했습니다.

가엾은 도리아의 희생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된 것은 그가 죽고 99년이 지난 2008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해 ‘푸치니의 여인’이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2006년, 파올로 벤베누티 감독이 푸치니가 살던 집 근처에서 식사를 하다가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푸치니의 사생아라는 남자가 이 피자집에 들르곤 했다는 것입니다. 벤베누티 감독은 이 얘기의 진실을 추적하다가 근처 치사넬로 마을에 있는 집을 방문했습니다. 푸치니 사생아의 딸이라고 밝힌 나디아라는 여인의 집이었습니다.

나디아가 벤베누티 감독에게 보여준 트렁크에서는 편지 40여 통이 나왔습니다. 푸치니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수신인은 줄리아 만프레디. 나디아의 할머니이자, 푸치니의 하녀 도리아 만프레디의 사촌이었습니다.

진실은 이랬습니다. 도리아는 사촌 줄리아와 푸치니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누설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비밀을 무덤에 가져가기로 마음먹고 목숨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투란도트’에 나오는 류도 ‘이름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끊습니다.

26∼29일 대구오페라하우스가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공연합니다. 이제는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 류의 모습을 보면서, 가엾은 도리아 만프레디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듯합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푸치니#투란도트#도리아 만프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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