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세상에 착한 나라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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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면 알수록 이 나라도 그리 착한 나라는 아니야.―한국이 싫어서(장강명·민음사·2015년) 》
 
가상통화 투자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김치 프리미엄’은 같은 가상통화라도 한국에서 사고파는 값이 더 비싸다는 뜻이다. 한국을 뜻하는 ‘김치’에 웃돈을 의미하는 ‘프리미엄’을 붙였다. 기발하고 재치 있는 단어라고만 생각하고 웃어넘기기에는 어딘가 구슬픈(?)면이 있다. “한국은 비트코인마저 다른 나라보다 더 비싼 나라야. 미친 나라야.” 김치 프리미엄에 녹아 있는 자조(自嘲)를 설명해주던 지인 A가 했던 말이다.

그의 말에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떠올랐다. 한국의 삶에 지쳐 호주로 떠난 주인공이 겪는 우여곡절을 담은 내용이다. 마침 1년 전 요리를 배우겠다며 호주로 유학을 간 B로부터 우연히 연락이 온 뒤 다시 읽고 있던 중이었다. B는 책의 주인공처럼 ‘한국이 싫어서’ 호주를 택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보단 기회가 많을 것이라 생각해 작은 자동차 회사를 그만두고 돌연 멜버른행(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헬조선 탈출이네.” 그를 보내던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했던 말이다.

“여기도 빡세. 한국에서 이렇게 살았으면 오히려 지금쯤 식당 하나 차렸을지도 몰라.” 호주에 대한 그의 평은 6개월 만에 많이 바뀌어 있었다. 반년 전만 해도 “날씨도 좋고 시급도 많아서 한국보다 훨씬 살 만하다”고 들떠 있던 B였다.

이유를 들어보니 이민법이 바뀌면서 영주권을 받기 훨씬 까다로워졌다고 했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 고등학교 3학년 때보다 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일은 하루에 8시간, 많게는 10시간까지 한다. 시급은 1만6000원 정도로 많지만 세금을 많이 떼는 데다 물가가 비싸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적자가 나지 않는단다. 여윳돈이 없어 가상통화 투자는 언감생심이라고 했다. 병원비가 비싸 급체나 독감이 와도 그냥 참아야 한다. “좀 살아 보니까 이 나라도 그렇게 좋은 나라는 아냐.” 수화기 너머 B가 웃으며 한 말은 호주에서의 삶에 익숙해진 책 속 주인공이 한 말과 닮아 있었다.

B의 소식을 듣고 나니 한국이 싫은 이유보다 호주를 싫어해야 할 이유가 두 배쯤은 더 많이 담긴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책을 읽지 않은 B에게 이 책을 선물해도 될지 고민 중이다. 위로가 될지, 그의 향수를 폭발시킬지 확신이 안 서서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한국이 싫어서#장강명#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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