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축을 말한다]<9>황두진의 ‘한강다리 카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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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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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구름… 바람… 강물…
느껴지나요, 한옥의 정취

황두진 씨가 설계한 서울 동작대교 남쪽 북단 방향의 ‘구름’ 카페. 한강시민공원에서 계단, 엘리베이터로 오가거나 시내버스, 자가용으로 방문할 수 있다. 사진 제공 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황두진 씨가 설계한 서울 동작대교 남쪽 북단 방향의 ‘구름’ 카페. 한강시민공원에서 계단, 엘리베이터로 오가거나 시내버스, 자가용으로 방문할 수 있다. 사진 제공 황두진건축사사무소
1일 오전 1시 서울 동작대교 남단. 표지판을 따라가면서도 ‘다리 위에 정말 차를 세울 수 있을까’ 불안했다. 한강시민공원에서 교량으로 올라가는 진입로 끝에 불현듯 주차장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강바람을 안으며 걸어 들어간 ‘다리 위 카페’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따뜻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무실에서 이 카페 설계자 황두진 씨(47·황두진건축사사무소장)를 만났다. 그는 세련된 현대식 한옥 작업을 통해 알려진 건축가다. 2005년 완공한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택 ‘무무헌(無無軒)’을 시작으로 재동 레스토랑 ‘가회헌’(2006년), 경기 이천시 휘닉스스프링스 골프클럽 게스트하우스(2009년)까지 10채의 크고작은 한옥을 지었다. 동작 한남 잠실대교 위에 지난해 만든 보행자시설과 카페는 ‘한옥 건축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프로젝트다.

“현대건축 작파하고 한옥만 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습니다. 인연 탓이고 인연 덕이죠. ‘한옥 짓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스스로 씨앗을 뿌렸으니 어쩌겠습니까.”(웃음)

그의 어깨 위에 한옥이라는 과제를 얹은 이는 서울 종로구 레스토랑 ‘나무와 벽돌’의 윤영주 사장이다. 2004년 이 레스토랑을 개량보수하면서 2층 벽과 천장에 숨어 있던 목재 구조의 매력을 살려내는 것을 본 윤 사장이 무무헌 설계를 맡겼다. 한옥을 깊이 공부하거나 한옥 건축에 참여해본 적이 없었던 황 소장은 처음에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한국 건축가들은 만날 ‘한옥이 좋다’고 얘기하면서 왜 실제로 만들지는 않느냐, 지어보지도 않고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아느냐”는 윤 사장의 말에 불끈해서 덜커덕 일을 맡았다.

“무책임하다는 소리에 오기가 났죠. 160m² 정도의 그리 넓지 않은 땅인데, 집을 다 짓는 데 1년 반이 걸렸습니다. 밑바닥부터 공부할 테니 시간을 달라고 했거든요. ‘원래부터 한옥에 뜻을 뒀다’고 말하면 멋지겠지만…. 한옥의 현대적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세 번째 한옥 짓기를 마친 뒤였습니다.”

자를 들고 터를 실측해 기둥을 세우고 기왓장을 올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보편성’의 중요함이었다. 그는 ‘한옥이 특수성의 자아도취에 스스로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단청 등의 디테일을 건물 일부분에 삽입하거나 뒷마당, 안방 등 전통적 공간 구획을 응용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한옥을 현대건축의 한 갈래로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한가롭게 ‘지붕 선(線)의 매혹’ 운운하는 감상을 털어내고 보편적 현대건축 안에서 생존과 진화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사무소는 한옥에 경도된 사람은 직원으로 뽑지 않아요. ‘한옥 설계 팀’ 같은 것도 없습니다. 한강다리 시설 실무를 맡은 팀장도 그 바로 전에 한옥 작업을 했죠.”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한옥의 요소를 활용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한강다리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공간은 밖에서 바라본 건물 자체의 외관보다 안에서 내다본 풍경에 의해 규정된다. 공항 관제탑을 참고해 반사를 최소화하도록 깔때기처럼 경사지게 만든 외벽은 이 공간이 추구하는 최우선 가치가 ‘조망’임을 알려준다. 방문자의 뇌리에 남는 것은 건물의 형태가 아니라 그 내부에 앉아 흘려보낸 하늘과 바람, 강물이다.

30여 년 전 만들어진 교각 위에 보행자를 위한 수직이동 시설과 휴게공간을 만든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여름철 홍수 때 물이 빠지는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통나무 등 부유물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가로 단면이 유선형인 콘크리트 벽체, 널찍한 계단참 개구부는 그런 요인을 고려한 것이다. 황 소장은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벤치마킹’으로 풀려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카페로 홍보되지만 처음에는 버스정류장과 엘리베이터 계획만 있었어요. 이왕에 수직 동선이 생길 테고 전망이 좋으니 쉼터를 만들자는 얘기는 한참 뒤에 나왔죠. 계단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만 1년 걸렸습니다. ‘한강공원 축제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교량 위에 잔뜩 적체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뭐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지….”

그는 자신이 설계한 한강다리 카페에 1시간 넘게 머문 적이 없다. 운영업체에서 설계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화려하게 꾸며 놓은 인테리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정제된 미감 안에서 상업적으로도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고민했지만 이런 배려는 덕지덕지 붙은 장식물 때문에 희미해져 버렸다.

“카페가 알록달록하지 않으면 장사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시민이 좋아하는 공간이 정말 이런 모습일까요? 사용자의 센스를 제도적 장치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모습은 거의 나이트클럽이죠. 안타깝습니다.”

황 소장은 까칠하고 거침없고 집요하다. 한옥 할 뜻이 없었지만 일단 손에 쥔 것이니 필생의 과제인 양 파고들었다. 건축을 시작한 이유도 단순하다. “그냥 뭐든 머리로 생각하면서 손으로 만드는 일이 즐거워서.” 그 즐거움 중에 유리지붕 한옥과 한강다리 카페가 나타났다. 사람들도 즐겁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황두진 대표는…

△1986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88년 동 대학원 석사 △1993년 미국 예일대 건축대학원 석사 △2000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2007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서울 가회헌),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특선(서울 취죽당)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서울 집운헌) △2007∼2010년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건축’ 독일, 에스토니아, 스페인, 한국 순회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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