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대만에 배운 승부조작, 대만 몰락 따라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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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부활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2012년 LG 박현준과 김성현의 승부 조작 사건이 처음 터졌고, 올해 NC 이태양과 상무(넥센 출신) 문우람이 같은 수법으로 적발됐다. 그런데 두 사건의 중간 지점인 2014년에 KIA 유창식이 승부 조작을 했다고 자진 신고하면서 야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승부 조작이 여태 계속돼 왔다는 얘기다.

브로커가 아닌 선수가 먼저 승부 조작을 제의할 정도로 수법이 대담해졌고, 사례금은 5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까지 올랐다. 4년 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일벌백계 조치는 무용지물이었다.

승부 조작의 볼모가 된 한국 야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제 우리는 대만 야구를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대만 야구는 조직폭력배가 주도한 승부 조작으로 패가망신한 경우다. 과거 우리가 승부 조작의 청정 국가를 자처할 땐 막연한 ‘반면교사’였지만,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보여 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대만의 국기(國技)는 야구다. 1980년대 리틀 야구팀의 국제대회 우승 열기를 등에 업고 1990년 4개 팀으로 구성된 프로 리그가 출범했다. 프로야구는 이듬해 곧장 100만 관중을 돌파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1997년에는 11개 팀으로 급속히 팽창했다. 그런데 1995년 164만 명까지 치솟았던 관중이 1997년 60여만 명으로 급락했다.

승부 조작 때문이었다. 검은 호랑이 사건(1995년)을 시작으로 검은 독수리 사건, 흑사회 사건 등이 1, 2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터져 나왔다. 2000년대 들어 검은 곰 사건(2005년) 이후 검은 고래 사건, 블랙 미디어 사건, 검은 코끼리 사건 등이 이어지며 조용한 날이 없었다. 1995년부터 터진 굵직한 승부 조작 사건 6건으로 7개 팀이 사라져 지금은 4개 팀만 남았다.

대만 야구라고 처음부터 거창했던 건 아니다. 그들도 애초에 ‘고의 볼넷’으로 조작을 시작했다. 이후 득점과 실점이 포함되고, 수비 실책 등으로 베팅 항목이 계속 늘어났다. (선발) 투수에 이어 야수가 검은 세력의 숙주로 포섭됐고, 나중에는 감독까지 리스트에 올랐다.

1984∼88년 국내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의 에이스였던 대만 출신 쉬성밍이 길거리에서 흉기에 찔린 것도 승부 조작 때문이었다. 웨이취안 드래건스 감독이던 1999년 승부 조작을 거부하다 조직폭력배에게 변을 당한 것이다. 지난해 국내 프로야구 진출을 추진했던 거포 린즈성의 경우 조폭들이 그의 어머니에게 저리(低利)로 돈을 빌려준 뒤 이를 빌미로 포섭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 가족까지 납치할 정도로 돈 맛에 빠진 조폭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대만 야구 전문가 김윤석 씨는 “2008년 대만 조폭들이 우리나라 검은 세력들에 승부 조작 노하우를 전수해 준 뒤 지금까지도 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대만은 프로리그 사무국이 선수들의 계좌까지 샅샅이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도 승부 조작을 뿌리 뽑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신인 선수들이 입단할 때 잠시 교육만 하고 만다. 이제는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해야 한다. 승부 조작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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