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 파울볼을 조심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7일 1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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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손을 뻗었을 것이다. 파울볼은 야구장을 찾은 사람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전리품이니까. 그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10월 14일 시카고 컵스와 플로리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이 열린 시카고 리글리 필드. 그는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스친 파울볼은 스탠드로 떨어졌다. 공은 옆 자리 관중이 주웠다.

스티브 바트만(아래 사진). 이 사소한 사건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컵스는 여전히 8회 1사 후까지 3-0으로 앞서고 있었다. 시리즈 전적에서도 3승 2패의 우위였다. 월드시리즈 진출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완벽했던 선발 투수 마크 프라이어는 갑자기 난조에 빠졌다. 볼넷과 안타를 연달아 허용했다. 야수들도 얼이 빠진 듯했다. 어이없는 실책이 나왔고, 또 안타를 맞았다. 그렇게 8회말에만 무려 8점을 내줬다. 믿기 힘든 역전패했다. 컵스는 최종 7차전에서도 패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또 다시 실패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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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스 팬들은 ‘염소의 저주’를 떠올렸다. 1945년 리글리 필드에 애완염소를 데리고 왔다가 쫓겨 난 빌리 시아니스는 “다시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날 이후 컵스는 정말 월드시리즈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분노는 엉뚱하게도 ‘저주의 화신’이 되어 버린 바트만을 향했다. 분노에 찬 관중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몇몇은 쓰레기를 던졌다. 경찰이 출동해 엄호하지 않았다면 그는 무사히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그에게 벌어진 일은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일부 언론과 온라인 등을 통해 그의 신상이 유출됐다. “정말 죄송하다”는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모욕과 협박은 그칠 줄 몰랐다. 그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플로리다의 젭 부시 당시 주지사는 “플로리다로 망명하라”는 농담을 스스럼없이 했다.

그는 결국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컵스와 관련된 사안이 떠오를 때마다 그의 이름 역시 새롭게 떠올랐다.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은 끊이질 않았다. 상업적으로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더더욱 몸을 숨겼다.

인터넷 캡처
인터넷 캡처

그가 복권된 것은 최근이다. 지난해 클리블랜드를 꺾고 1908년 이후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 컵스는 얼마 전 바트만을 리글리 필드로 초청했다. 톰 리케츠 구단주가 직접 그에게 우승반지를 선물했다. 미국 프로스포츠 사상 가장 긴 우승 가뭄을 겪었던 컵스는 버림받았던 마지막 팬인 바트만을 끌어안았다. 바트만 역시 “그 사건 이후 나와 내 가족의 둘러싼 암흑기가 이제 완전히 끝난 것에 안도한다”고 했다. 컵스는 챔피언다운 품격을 보였고, 바트만은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파울볼 역시 그렇다.

바트만이 컵스에서 받은 우승 반지. 컵스 홈페이지
바트만이 컵스에서 받은 우승 반지. 컵스 홈페이지


P.S. 물리적으로도 파울볼은 조심해야 한다. KBO리그에서 2016년 발생한 파울볼 사고는 155건이나 된다. 보험처리를 한 건만 그렇다. 전 메이저리거 제이슨 켄달은 자신에 책에 이렇게 썼다. “야구장에서 당신 옆에 앉은 그 아이를 (파울볼에서)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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