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본 2002월드컵]<상>성공적 대회운영

  • 입력 2002년 7월 1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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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서울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 길거리 응원단의 응원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서울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 길거리 응원단의 응원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막은 내렸다. 그러나 그 열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지난 한달동안 한반도는 물론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2002한일월드컵은 역대 월드컵 중 최고의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대회의 전반적인 운영과 각종기록, 그리고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했던 스타이야기 등 3회에 걸쳐 되돌아본다.》

“이번 대회 가장 빛나는 스타중 하나는 공동개최였다.”

2002한일월드컵이 막이 내린 다음날인 1일 세계 유수의 통신사인 AP는 결산기사에서 “수백만 붉은 물결과 푸른 물결이 보여준 한국과 일본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월드컵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고 전 세계에 타전했다. 특히 AP는 “한국과 일본의 축구팬들은 한마음이 돼 한국을 응원해 아시아축구의 저력을 지구촌에 보여줬다”고 전했다.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사상 첫 공동개최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을 취재한 3000여명의 외신기자들이 가장 놀랍게 여기는 것은 한반도를 온통 붉게 물들인 ‘붉은 물결’ 응원단이었다. 50만에서 70만, 급기야 700만명까지 늘어난 길거리 응원단이 똑같은 옷을 입고 펼치는 응원 모습에 그들은 경탄했다. 일본이 16강에서 탈락하자 붉은 옷을 입고 한국을 응원한 ‘울트라 닛폰’ 응원단의 모습에도 그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월드컵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됐다는 평가다.

지난달 26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내에서 열린 월드컵 자원봉사자 격려대회. [동아일보 자료사진]

공동개최가 결정된 뒤 운영상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회 명칭과 개막전과 결승전을 포함한 경기 배분, 경기 스케줄, 선수단과 관중의 이동, 교통·숙박, 미디어서비스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명칭 문제가 돌출돼 양국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일본이 한국-일본 월드컵을 일본-한국 월드컵으로 표기했던 것.

그러나 양측은 대회 공식명칭을 한일월드컵으로 결정하는 대신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결승전을 일본에서 치르기로 합의하면서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한국이 결승전을 양보한 대신 개막전과 본선 조추첨행사, FIFA 총회를 치렀고 64경기를 반으로 나눠 32경기씩 똑같이 나눠 치르기로 했다.

양국을 오가야 하는 선수단과 관중, 취재진들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 정기 항공노선 외에 한국의 김포와 일본의 하네다간 특별 전세기를 투입했다. 또 한국과 일본은 양국 국민을 제외한 외국인들에게 복수비자를 발급, 자유로운 여행을 도왔고 양국끼리 무비자 제도를 도압해 입국절차도 최대한 간소화 했다.

큰 문제 없이 월드컵이 막이 내린데는 이같은 양국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팬들이 ‘하나’가 된 것도 양국이 성공개최를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실인 셈이다.

하지만 경기장이 텅 비게 만든 입장권 배문 문제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옥에 티’였다. 경기 내용과 관련해서는 AP와 AFP, DPA 등 세계적인 통신사들이 “돌풍의 연속이었지만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슈퍼스타들을 보유한 나라가 초반에 탈락해 다소 맥이 빠진 대회였다”고 입을 모았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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