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이 어여쁜 광장에 딱 2% 부족한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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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서울 광화문광장

그림 이중원 교수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설날 연휴 경복궁이 무료로 개방됐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때 조선총독부 건물이 지금의 광화문 자리에 있어서 남북축을 따라 궁의 클라이맥스인 근정전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때는 지각한 학생처럼 오른쪽 사이드에서 비겁하게 근정전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평범한 시민이 군왕처럼 남북축을 따라 놓인 외삼문(광화문 흥례문 근정문)을 통해 당당히 들어간다. 근정전의 수직성이 한결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경복궁의 지붕들은 파도쳤다. 파고가 광화문과 근정전에서 높았고 흥례문과 근정문에서 낮았다. 지붕들 위로는 산들이 파도쳤다. 짙푸른 명절 겨울 하늘은 서핑 하듯 산과 지붕을 탔다. 월대 위에 선 근정전은 왕의 집무실답게 당당했고 주위 회랑은 그림자가 앞 두 마당과는 달리 짙었다. 탄성과 카메라 셔터음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서울은 두 겹의 테두리를 둘렀다. 바깥쪽 테두리는 관악산(남)과 북한산(북)이고 안쪽 테두리는 남산(남)과 북악산(북)이다. 이 산들이 서울의 이중 테두리를 형성하며 지형적 남북축을 형성한다. 옛 이름인 ‘한양(漢陽)’은 북한산 기슭 남쪽, 한강 북쪽에 빛(陽)이 내리는 터라는 의미다.

정도전이 한양도성과 경복궁을 디자인했다. 도성은 고대 로마 도시처럼 십(十)자를 가운데에 박았다. 카르도(Cardo·남북 도로 및 광장)에 해당하는 도로가 육조거리(광화문광장)이고 데쿠마누스(Decumanus·동서 도로 및 광장)에 해당하는 도로가 운종가(종로)다. 오늘날까지 서울은 카르도에서 언로(言路·말의 통로)가 열리고 데쿠마누스에서 상로(商路·거래의 통로)가 열린다.

경복궁은 지세를 따라 남북이 종축이 되게 배치했다. 경복궁(景福宮)의 ‘경’자는 건축가인 정도전의 의지가 물씬 풍긴다. 빛(日) 아래 도시(京)를 두었다. 태양에 의해 곡식이 넉넉하고 빛(진리)에 의해 늘 밝아지는 도시는 윤택하고 행복한 도시다. 조선(朝鮮)의 조(朝)가 ‘아침’인 점을 감안하면 한양의 빛(陽)과 경복궁의 빛(景)은 지는 해가 아니라 뜨는 해다. 일몰(고려)의 사라져가는 빛이 아니라 일출(조선)의 떠오르는 빛이다.

요새 광화문광장 공모전 결과 발표로 시끄럽다. 우리가 생각하는 간판 광장이란 무엇일까.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몰 같은 상징적인 광장인가, 아니면 중국 톈안먼광장 같은 이념적인 광장인가. 두 광장 모두 건축적 위용은 분명 있다. 그러나 모두 일상과는 너무 떨어져 있고, 휴먼 스케일과는 거리가 너무 멀고, 정치 지도자를 너무 부각시켜 광장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지배-피지배 관계가 부담스럽다. 모두 2% 아쉽다.

그에 반해 광화문광장은 얼마나 좋은가. 우선 사랑스러운 경복궁과 숭례문이 북남으로 자리 잡아 전통의 가치를 품위 있게 드러내고 있고, 실핏줄 조직 같은 아기자기한 도심 골목길이 광장 좌우로 무한히 펼쳐지고 있고, 청계천과 시청광장과 공공 문화시설이 접속되어 있다. 멋진 광장이 되기 위한 천혜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광화문광장에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는 나무와 벤치다. 여름마다 양산을 든 채 ‘짝다리’를 짚고 선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둘째는 한여름 더위와 한겨울 추위를 잠시 피할 수 있는 카페 같은 공간이 없다. 셋째는 아직도 조금 넓다. 드론에서 찍은 사진은 괜찮은데 사람 눈높이에선 휑하다. 넷째는 인천공항처럼 무제한 와이파이(WiFi) 보급이 없는 것이 아쉽다. 공휴일 오후 6시간 동안만이라도 광화문광장에 무제한 인터넷이 공급되면 좋겠다. 다섯째는 한국 대표 글로벌 상품 플래그십 스토어 몇 개가 광장에 접속하면 좋겠다. 그래서 ‘다이내믹 퓨처 코리아’가 전통만큼 표출되면 좋겠다. 사실 유럽 대학 교환학생들은 ‘도시의 미래’를 보러 서울에 온다고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광장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기능을 충족해야 한다. 광장은 도시를 발생시킨 원인을 상징부호(문화재)로 드러내야 한다. 역사성이다. 광장은 권력을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집단의 소리로 부패한 권력을 고발하고 정의와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 집회성이다. 광장은 전쟁 승리, 스포츠 우승 등 사회가 요구하는 축제의식을 수행해야 한다. 축제성이다. 매력적인 공공 건축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워야 한다. 건축성이다. 광장은 시대의 과제와 요청에 따라 늘 새로워지고 늘 빛나야 한다. 미래성이다. 경복을 잊지 않는다면 광화문광장은 다시 첫 창조 질서대로, 오리지널 디자인대로 다시 광화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에 의해 새로이 빚어질 수 있다.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광화문광장#건축#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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