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47〉정략결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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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호가스 ‘결혼계약’. 1743년경.
윌리엄 호가스 ‘결혼계약’. 1743년경.
풍자와 해학은 사회 현상을 통찰하는 눈이 있을 때 가능하다. 윌리엄 호가스는 18세기 영국 최고의 풍자 화가였다. 그는 도덕적 주제에 특유의 해학을 섞어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이 그림은 당시 영국 상류층의 부도덕한 결혼 세태를 풍자했다.

그림은 돈이 필요한 몰락 직전의 백작과 신분 상승을 꿈꾸는 중인계급 상인이 자식들의 결혼 계약을 맺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테이블 오른쪽에 앉은 백작은 왼손으로 족보를 가리키며 자신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과시하고 있고, 맞은편에 앉은 상인은 안경을 쓰고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중개인은 상인이 준비해온 딸의 결혼 지참금과 계약서를 백작에게 넘기고 있고, 테이블 위엔 금화가 잔뜩 쌓여 있다.

정작 혼인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푸른색 코트를 입은 신랑은 자아도취에 빠진 듯 신부가 아니라 거울 속 자신만을 보고 있고, 신부는 나중에 정부가 될 변호사 실버텅의 말만 듣고 있다. 집 안을 장식한 값비싼 그림들과 호화로운 장식, 창밖으로 보이는 공사가 중단된 고급 저택이 백작의 파산 이유를 넌지시 알려준다. 이 결혼으로 상인은 상류층이 되는 꿈을 이루고, 백작은 긴급한 재정 문제가 해결되길 바랐을 것이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결혼과 동시에 부부는 급속한 파국의 길로 접어든다. 신랑은 방탕한 생활로 매독에 걸리고, 신부와 변호사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다가 칼에 맞아 사망한다. 결국 변호사도 살인죄로 사형을 당하고 망연자실한 신부 역시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그림은 당시 상류층 사회의 부도덕성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그런데 정략결혼에서 불륜, 살인, 자살까지 막장 드라마 같은 그 옛날 결혼 이야기가 과연 우리 시대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윌리엄 호가스#결혼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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