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12>미술의 시대정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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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이웨이 ‘해돋이’. 2017년.
아이웨이웨이 ‘해돋이’. 2017년.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가족을 만들거나, 이직이나 해외 이주를 택하기도 한다. 2016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지수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다. 작년 여름, 행복한 나라의 수도 코펜하겐에선 행복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전시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중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인 아이웨이웨이는 뉘하운 운하에 있는 17세기 샤를로텐보르 궁전을 강렬한 현대미술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옛 궁전의 파사드 창문들을 3500개가 넘는 낡은 구명조끼로 막은 거대한 설치미술이었다. 레스보스섬에서 수집된 이 구명조끼들은 실제 난민들이 입었던 것이다. 레스보스섬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주요 경유지다.

‘해돋이’라는 제목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1872년)에서 따왔다. 모네 그림은 여명 속 항구의 모습을 순간 포착해 빠른 붓질로 그린 풍경화지만 당시의 사회 정치적 현실도 보여준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크레인이나 증기선은 보불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의 재생과 산업화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아이웨이웨이의 ‘해돋이’ 역시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난민 문제라는 사회 정치적 현실을 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조사에 따르면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137만7349명의 난민이 바다를 통해 유럽 대륙에 도착했고, 이 과정에서 8000명 이상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2017년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에 맞춰 공개한 ‘해돋이’는 그해 10월 1일까지 선보였다.

“난민 위기는 없고, 인간의 위기만 있다”고 말하는 아이웨이웨이는 유럽 난민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예술가일 뿐 아니라 인권운동가로도 잘 알려진 아이웨이웨이. 그는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한 나라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불행한 이들의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미술의 시대정신을 일깨웠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아이웨이웨이#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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