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우당탕탕]〈14〉내 인생의 마지막 한 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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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내 인생이 딱 한 시간 남아있다면?’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10대에도 해봤고 20대, 30대에도 해봤는데 나이마다 다른 상상을 하게 된다. 10대에는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친구들과 오락실에 가서 실컷 게임이나 했으면 좋겠다.’ 갤러그, 보글보글, 스트리트화이터…. 100원짜리 동전 한 개가 기계에 들어갈 때 ‘덩그렁’ 소리가 귀를 통해 전해지면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 짜릿함이란. 온 정신이 내 몸만 한 오락기로 빨려 들어가 기계와 물아일체가 되는 아찔한 느낌이랄까. 그러면 내 인생은 성공한 것만 같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좀 슬프긴 하지만.

20대에는 글을 남기고 싶었다. 치열하게 글을 쓰며 살았던 때였다. 가장 먼저 내가 후회하는 일을 하나씩 적어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는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했는지, 내 게으름 때문에 누군가를 기다리게 했는지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후회하는 일을 적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미안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한 장씩 남기고 싶었다. 말로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짧게나마 편지로 남기면서 용서를 받고 싶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내 인생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한 줄의 글을 남기고 싶었다. ‘이런 글들을 마무리한다면 내 인생은 성공한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가족이 생기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사진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처음 만나 데이트하던 시절의 사진, 결혼과 신혼여행 사진, 아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나던 날의 사진, 처음 걸음마를 뗐을 때의 사진, 유치원에 처음 입학하던 날의 사진…. 마지막 한 시간 동안 그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사진 속 울고 웃던 순간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40대 중반이 된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좀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유튜브를 보다가 가고 싶다.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그 옛날 ‘강변가요제’를 접하게 됐고, 1회부터 10회까지 수상자들의 영상을 모두 보게 됐다. 강변가요제를 보고 나니 ‘대학가요제’가 추천영상으로 올라왔다. 이선희(4막5장)의 ‘J에게’, 이상우 ‘슬픈 그림 같은 사랑’, 이상은 ‘담다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같은 노래들.

그 시절 노래와 영상을 보며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를 모두 본 다음에는 ‘가요 톱 텐’ ‘젊음의 행진’ ‘유머 일번지’를 찾아서 보게 됐다. 어릴 때 친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 아련하게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그 행복감까지. 정말 짜릿한 한 시간이 될 것 같다.

50대가 되고 나면 또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가족을 추억하는 데 한 시간을 쓰겠지만 가끔씩 ‘내 인생의 마지막 한 시간’을 상상해보는 건 도움이 된다. ‘현재의 삶이 누추할수록 과거는 빛난다’라고 말한 이도 있지만 추억의 힘은 강하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세대#강변가요제#대학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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