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우당탕탕]〈12〉가끔은 스스로 대견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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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지난주 반가운 전화 두 통을 받았다. 요즘 웬만하면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는데 굳이 전화해서 안부를 전한 두 사람이 있다. 먼저 전화를 한 이는 보험설계사였다. 그는 가수 매니저를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15년 전 보험설계사로 전직했고, 나는 그를 응원해주기 위해 보험에 가입했다. 때가 되면 찾아와 보험금이 어떻게 쌓여 가는지 설명해줘 딸이 태어났을 때도 그에게 보험을 들었다. 이번에도 보험을 설명하려고 전화한 줄 알았는데,

“재국 씨, 잘 지내요? 제가 보험 시작한 지 오늘이 딱 15년 되는 날이더라고요. 지금까지 15년 동안 납입한 분은 재국 씨밖에 없어요. 감사하다고 전화드렸어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그때 잘 설득해주셔서 그나마 이거라도 유지하고 있는 게 다행이네요.”

별로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나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15년 전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고 최근까지도 프리랜서로 일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해약하고 나만 납입하고 있다니.

“다른 분들도 다 프리랜서예요?”

“아니요. 다른 분들은 대부분 회사원들이죠. 보통 프리랜서가 더 불안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해약하고, 프리랜서인 재국 씨만 유지하고 있다는 게 저도 신기하네요.”

우리는 늘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데, 과연 그게 있기는 한 걸까? 직장과 직업은 엄연히 구분되고 어떤 직업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프리랜서로 버텨온 내가 갑자기 대견하게 느껴졌다. 역시, 안전한 것처럼 느껴지는 게 때로는 불안한 거고, 불안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버티는 게 때로는 더 안전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 전화한 이는 고등학교 친구였다.

“재국아! 나 상무 진급했다! 날짜 두세 개만 정해줘! 내가 술 한잔 살 게.”

대기업 상무가 됐다는 친구 전화에 기분이 좋았고 오랜만에 그와 만나 술을 마셨다. 그런데 친구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너 스물여덟 살 때 나한테 해준 말 기억나니?”

“스물여덟 살 때? 나 연극할 땐데.”

“그래 너는 대학로에서 연극하고 있었고, 나는 입사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내가 너 찾아갔잖아 대학로로.”

“그게 몇 년 전인데, 당연히 기억 안 나지!”

“난 그때 네가 부러웠거든. 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 같아서. 나는 매일 회사에서 선배들한테 욕먹고 스트레스 받고…. 일은 다 나만 시키고 과장, 차장, 부장은 매일 담배만 피우러 다니고 술 마시러 다니고….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했더니 네가 그랬잖아. ‘일하는 사람이 너밖에 없으면 네가 열심히 일해서 사장하면 되겠네.’ 나 그 말 한마디로 지금까지 버텼다.”

별 생각 없이 해 준 말인데, 그 말이 힘이 됐다니. 어떤 말이나, 어떤 상황은 시간이 지나야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당장의 상황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진심이 오래 전해질 수 있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는 연말이 됐으면 좋겠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프리랜서#회사원#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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