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31〉평화에 대한 착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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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0세기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 거란은 여진 정복을 시작했다. 거란과 고려 사이에 살던 여진족은 거란의 공세에 지리멸렬했다. 일부는 거란군을 피해 고려 국경 안으로 들어왔다. 여진 부족 중에는 고려가 자신들을 지원해 주기를 바라던 사람도 있었다. 고려도 여진족의 내심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는 냉담했다. 고려의 외교 방침은 불간섭주의였다. 거란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이상, 여진과 거란의 싸움에 말려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왜 헛된 피를 흘려야 하는가? 대단히 현명하고 실리적인 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제사회도 어찌 보면 하나의 공동체다. 자신만의 이해, 아니 자신만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미움을 받고,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고려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한다.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갑자기 고려를 침공했다. 놀란 고려는 전국에 징집령을 내리고, 선발대를 파견했지만 거란군에 패하고 말았다. 소손녕은 무려 80만 대군을 거느리고 왔다고 큰소리를 쳤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소손녕의 병력이 5만 미만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고려에는 훌륭한 장수와 병사들도 많았고, 군사적인 잠재력이 풍부했다. 그러나 평화주의로 군대를 놀리고 있었던 덕에 고려 정부는 자신들의 잠재력을 전혀 몰랐다.

공포에 질린 조정은 황해도의 자비령 이북 땅을 떼어주고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거란군이 안융진이란 작은 요새를 공격했는데, 발해 유민인 대도수가 잘 싸워 승리했다. 그것을 본 고려는 비로소 거란군의 실체를 알았고, 유명한 서희의 외교를 통해 거란군을 돌려보냈다. 조선의 실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이런 사평을 남겼다. “일단 싸워 보고 화친을 요구해야 화친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적을 두려워하여 한갓 화친만을 주장한다면, 적은 농락과 능멸을 못할 짓 없이 할 것이다.” 요즘 돌아가는 사태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소손녕의 침공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 우리는 과연 그 교훈을 귀감으로 삼고 있는 걸까?
 
임용한 역사학자
#거란#고려#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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