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75〉나비 부인과 나비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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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지만 때로는 아름다움 속에 편견을 숨겨 놓기도 한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이 그렇다. 물론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미국 해군 장교 핑커턴과 그에게서 버림받는 일본 기녀 사이에서 빚어지는 비극적 이야기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었다.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아리아 ‘어느 갠 날’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는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오페라가 원전이 가진 편견을 공유하는 데 있다. 원전은 프랑스 해군 장교이자 소설가인 피에르 로티의 자전소설 ‘국화 부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화 부인’의 영향을 받아 쓰인 존 루서 롱의 단편소설 ‘나비 부인’이다. 오페라는 스토리를 차용하면서 원전이 가진 동양 여성과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선까지 차용했다. 나비처럼 가냘프고 순종적인 동양여자, 서양의 남성성에 굴복하기를 기다리는 동양의 여성성.

예술의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일은 결국 예술의 몫이다. 중국계 미국 작가 데이비드 황의 연극 ‘M. 나비’는 좋은 예다. 이 연극에는 프랑스 외교관 르네 갈리마르와 중국 배우 송릴링이 등장한다. 그런데 갈리마르가 열렬히 사랑했던 송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게 드러난다. 남자가 여자 배역을 대신하는 중국의 극 전통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다. 작가는 동양에 대한 프랑스 남자의 선입관과 편견을 주제화함으로써 푸치니의 ‘나비 부인’에 내재된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를 통쾌하게 뒤집는다. 사랑에 속고 버림받는 건 이번에는 동양 여자가 아니라 서양 남자다. 작가의 말대로, 갈리마르는 자신을 ‘나비 부인’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으로, 연인을 나비로 생각했지만 “극이 끝날 즈음 자신이 나비였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제목도 ‘M. 나비’다. 나비 씨.

이렇듯 어떤 예술작품은 무의식적으로 편견을 공유하고 편견을 강화하지만, 어떤 예술작품은 의식적으로 편견을 깨뜨리는 데 기여한다. ‘나비 부인’과 ‘M. 나비’의 차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나비 부인#자코모 푸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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