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67〉푸드뱅크와 예술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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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뱅크라는 곳이 있다. 식품 및 생활용품을 기부받아 저소득층에 지원해주는 비영리단체다. 우리말이 아닌 이름이 말해주듯, 푸드뱅크는 다른 나라에서 먼저 생겨 우리나라로까지 확산되었다. 최근에 푸드뱅크를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만든 사람이 있다. 걸어가면서 책을 읽는 소녀가 화자로 등장하는 ‘밀크맨’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애나 번스, 그가 쓴 ‘감사의 말’ 때문이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상처를 그린 소설의 끝에 붙은 ‘감사의 말’은 독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읽은 스토리가 푸드뱅크, 홈링크를 포함한 많은 자선단체들과 복지정책의 도움이 없었다면 쓰이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번스는 그렇게 가난한 작가였다. 설상가상으로 만성적인 요통과 신경통으로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러니 빚을 얻어 써야 했고 푸드뱅크를 비롯한 다양한 곳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는 7000여만 원의 상금으로 뭘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우선 빚을 갚고 나머지로 살겠습니다.” 그의 사례는 경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사회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가난한 데다 건강하지도 못한 사람이 예술은 무슨 예술인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야 할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먹고사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가능한 것이 예술 아닌가. 서글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저소득층에서 예술가들이 나오기 힘든 이유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푸드뱅크를 찾아갈 정도로 가난하지만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가난 때문에 예술 밖으로, 때로는 삶 밖으로 내몰릴 따름이다. 그들에게는 번스의 성공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될지 모른다. 가난을 도덕적 흠결이나 실패쯤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이뤄낸 값진 성취이기에 더욱 그렇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사회가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푸드뱅크#밀크맨#애나 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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