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64〉남들도 우리처럼 사랑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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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도 우리처럼 서로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 “남들도 우리 같은가?” 얼마나 행복하면 이런 말이 나올까.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는 사랑의 높이. 400여 년 전 안동에 살았던 어느 여인이 신문지 한 장 크기의 한지에 붓으로 쓴 편지가 그러한 사랑을 애달프게 전한다.

그것이 애달픈 것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편지의 서두가 확인해주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서른한 살의 나이로 남편이 갑자기 죽었을 때 아내가 쓴 편지는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남편 옆에 머물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편지는 수신자(“원이 아바님께”), 작성 일자(“병술 뉴월 초하룻날”), 작성 장소(“집에서”)가 적힌 오른쪽을 제외하면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들 만큼 글자들로 빼곡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써 내려가다가 더 이상 남은 공간이 없자 종이를 옆으로 돌려 위쪽 여백에까지 쓴 탓이다.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라는 문장이 반은 아래쪽에, 나머지 반은 위쪽에 있는 이유다. 빈틈없이 빼곡한 글씨들은 남편을 잃은 여인의 슬픔과 애원, 사랑을 증언한다.

여인은 남편에게 꿈에라도 나타나 자식들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 속의 아이가 태어나면 누구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해야 할지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남들도 우리 같은가?”라고 물을 정도로 사랑했던 ‘자내’(당신)의 모습을 꿈에서라도 보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내 꿈에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이것은 현실 부정이 아니라 사랑의 확인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리얼리티 테스트’, 즉 냉엄한 현실이 남편의 부재를 환기시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사랑, 편지는 그 사랑을 아름답고 아리게 전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안동#편지#리얼리티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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