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50〉노비가 된 여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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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셰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것은 알아야 한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절반쯤 읽다 보면 나오는 말이다. 여기에서 “이것”은 사육신의 기개를 일컫는다. “저것도 사람이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신을 죽이고 의사(義士)를 죽이고, 나이 어린 조카와 동생도 개돼지 잡듯 죽이고” 임금이 된 자에게 맞섰던 사육신,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그들의 기개가 저자에게는 “500년 부끄러움의 시대”를 만회할 수 있는 “만장의 기염”이었다. 민족과 국가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려는 결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의 거대담론에는 빠진 것이 있다. 여자들의 고통이다. 세조는 1456년 9월, 단종 복위 사건 주모자들의 집안 여자들을 공신들에게 나눠줬다. 영의정에서부터 도승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수하들이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6명에 이르는 여자들을 물건처럼 받았다. 영의정 정인지는 박팽년의 아내를 포함하여 넷을 받았다. 170명에 달하는 여자들이 노비가 되어 그렇게 배분되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것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그것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트로이 남자들을 다 죽였다. 왕에서부터 어린아이까지 죽여서 후환의 소지를 없앴다. 여자들은 죽이지 않는 대신 노예로 삼았다. 일부는 제비뽑기로 주인이 배정되고 일부는 장수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골라서 가졌다. 그들은 노예가 되고 성적 노리개가 되었다. 트로이는 그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엇비슷하지만, 세조는 이민족이 아니라 자기 국민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그러한 여인들에 대한 애도였다. 그런데 우리는 사육신은 애도하면서도 그 여성들에 대해서는 애도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한국의 에우리피데스가 필요한 이유다. 그것만이 애도와 치유의 길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트로이#세조#사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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